728x90

최근에 샤프를 이것저것 사서 사용하다 보니 서점에 꽂혀 있는 이 책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처음엔 그냥 연필 예찬론이 적힌 책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연필에 대한 개발 스토리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과 미국을 넘나들며 펼쳐졌다.

 

서양에서 연필은 팬이라는 경쟁자가 있었으나 잉크를 별도로 관리하지 않아도 되며 언제든지 그 내용이 수정 가능하다는 장점 덕에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익히 알고 있듯이 연필은 주재료인 흑연(글이 써지면서 닳는 부분)과 부재료인 나무(쉽게 잡고, 검은 심이 손에 묻어나지 않도록 하는 부분)를 기본으로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질 좋은 흑연이 많은 곳에서 상업적 연필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영국에 있는 브로데일 광산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흑연 채굴이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지금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지만 당시에 연필 산업은 나름 첨단산업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 정부는 브로데일 광산의 갱도 입구에 아예 건물을 짓고 문을 닫아걸었다. 출입자를 엄격히 관리하기 위함이었으며 광부는 옷을 갈아입을 때 일일이 작업복 호주머니 속 검사까지 받았던 모양이다.

 

거기에다가 영국은 흑연의 해외 반출을 엄격히 관리하였다. 아마도 중요 산업이라고 판단하고 연필 만드는 주재료의 공급 능력을 독점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창이 있으면 방패도 생기는 법이다. 광부들 중에서는 흑연을 한입 가득히 머금고 검사를 받고 나온 후 밀매업자에게 입안의 흑연을 팔고 돈을 받아 갔는데 그 한입 정도의 흑연이 당시 광부의 하루치 일당이었다고 하니 금(gold)은 아니라고 해도 무척 귀하신 광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이 이처럼 흑연을 독점하며 연필 산업을 좌지우지하자 도버 해협 건너편의 경쟁자인 프랑스가 연필 산업에 도전한다. 프랑스의 콩테라는 사람은 용광로를 이용한 제철 기술을 전문으로 하던 기술자였다. 그런 그가 프랑스 권력자의 요청으로 연필 개발에 나서게 된다.

 

어찌보면 일종의 융합기술을 적용한 창의적인 공학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한다. 불순물이 섞인철을 녹이고 순수 철만 가공해 내듯이, 질이 떨어지는 흑연 광석을 잘게 가루로 만든 다음에 사용 가능 수준의 흑연만 골라낸다.

 

이를 다시 점토와 물을 일정 비율로 섞어 틀에 넣어 형성한 후 고온으로 구워낸다. 연필심을 현대적 공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흑연과 점토의 비율만 조정하면 얼마든지 H, HB, B 등급의 연필심 등급을 쉽게 조정할 수 있는 공법 말이다.

 

좋은 광산이 없어도, 좋은 광산에서 나온 흑연광의 들쑥날쑥한 품질 편차에도 상관없이 원하는 수준의 진하기가 나오는 연필심을 만들 수 있는 공법이었던 것이다.

 

독일도 Faber가문이 연필 산업을 일으켜 대를 이어가며 발전한다. 재밌는 뒷담화가 나오는데 Faber가문이 아들쪽으로 대를 이어가며 사업을 이어가다 불가피하게 딸쪽으로 사업을 이어가야 할 상황이 생긴 모양이다. 그러자 하는 수 없이 사위가 사업을 이어받는 되었다. ‘카스텔이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회사 이름이 Faber-Castel로 바뀌었고 이 회사는 아직도 존재한다.

 

한편 식민지 시절의 미국은 영국 본토의 연필을 수입해 쓰다가 영국과 독립전쟁을 하면서 수입산이 막히자 연필에서도 독립을 하게 된다.

 

독립을 달성한 이후에는 남북전쟁으로 연필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가정으로 편지를 써야 했기 때문이란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연필 산업도 큰 진전을 이루게 된다.

 

이처럼 발전하게 된 미국의 연필 산업은 미국인 사업가에 의해 러시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당시의 러시아는 공산주의 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본주의자에 의해 연필 공장이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기를 원한 것이었다.

 

결국 미국인 사업가가 독일의 기술자와 설비로 소련의 연필 공장을 가동하게 되었다는 첩보전을 묘사한 것 같은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유능한 기술자 임에도 불구하고 대우가 충분치 않다고 불만을 품은 기술자가 동료를 모집했고, 서방세계에 공장을 지을 듯 설비를 발주하여 러시아까지 비밀리에 빼돌렸으니 말이다.

 

이후 저자는 연필 산업에서 일본의 에피소드도 잠깐 다룬다. 일본의 연필은 당시엔 지금 세상의 중국 물건들과 거의 같은 취급을 받았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가격경쟁력은 있었지만 연필심이 불량하거나 심이 아주 조금(2cm) 들어 있다거나, 아니면 중간에 부러져 있는것만 모아 연필을 만드는 등 한마디로 엉터리였던 모양이다.

 

요즘 일본의 부총리라는 사람이 ‘민도’가 높다고 자랑을 했는데 민도가 높다라는 것은 다 헛소리였던 것이 드러났다. 우리나라의 6.25로 돈을 벌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 그 전에는 일본 역시 아주 몰상식한 수준이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하긴 요즘도 심심치 않게 회계부정이나 품질 불량품을 팔아놓고 뻔뻔하게 사죄를 하며 무마하지 않는가?

 

연필의 부재료인 나무이야기도 나온다. 연필의 나무 자루로는 삼나무가 제일 적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에서 초기엔 삼나무가 참 많았었다고 한다. 미국의 초창기 집 울타리는 흔한 삼나무로 만들어졌을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다 연필 수요가 급증하자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삼나무 벌목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하고도 연필용 자루를 만들려는 수요를 감당 하지 못하자 이미 울타리 말뚝으로 박혀있던 삼나무를 뽑아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물론 삼나무 말뚝이 뽑힌 자리에는 철로 된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웃기는 현상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런 연필 산업은 연필 깎는 기계와 샤프의 수요에까지 영향이 이어졌다. 특히 미국은 연필 깎는 기계에 대한 상업적 광고가 1910년대에 자주 등장하는데 연필 깍는 기계는 물론, 연필 생산 기계 등 전반적인 연필 산업은 당시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대한민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도 연필깎이는 부잣집에서만 볼 수 있었으니 당시 우리나라와 미국의 생활이나 기술 수준 차이는 약 60 ~ 70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잉크는 엎지를 경우 뒤처리가 곤란하기에 어린 학생은 처음에 연필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만큼 연필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있는 물건이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연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름 기억의 저편에서 아스라했던 그 무언가를 끄집어 내준 좋은 역할을 했다고 뚠자는 칭찬하며, 10~20대 보다는 40~50대 혹은 그 이상의 나이대의 독자들에게 감히 추천한다. 공돌이에겐 더욱 추천.

 

728x90
Posted by ttoonz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