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술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식사이며, 음료수이자, 기쁨이요 슬픔 그 자체다. 삼국지연의에도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유난히 많은 장수가 한 명 있다. 바로 익덕 장비다.
의형인 미렴공 관우와는 달리 무척 까칠한 수염을 길렀던 모양이다. 여타 작가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삼국지에서 장비의 수염을 따끔따끔한 밤송이 껍질에 비유 했으니 말이다.
뚠자가 기억하는 장비의 첫 음주 장면은 도원결의다. 역시 첫 만남이라 장비도 무척 조심스러 웠나보다. 큰 문제는 없이 훈훈한 형제의 출발이 묘사되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황건적을 토벌하고 논공행상에서 정규군이 아니었던 유비는 공적에 비해 다소 초라하게 조그마한 고을 현령이 된다.
매관매직등의 부패가 만연하던 시기였던지라 황제의 칙사 독우라는 자가 감찰을 하러와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으며 뇌물을 요구했다. 이런 모양을 며칠을 참다가 드디어 장비가 폭발한다.
음주 후 나무에 칙사를 묶어놓고 죽일 듯이 채찍질한 것이다. 그 일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조용히 잠수타기 신공에 들어갔다.
두 번째 음주 사건은 장비에게 본진을 맡기고 유비가 관우와 전투를 벌이러 나간 사이에 벌어졌다. 참아 보려고 했지만 장비는 음주를 하게 되었고 주사를 부리다 부하를 구타하게 된다.
억울하게 맞은 부하는 여포에게 본진을 급습하도록 성문을 열어주었다. 장비는 유비 관우의 가족도 내버려둔 채 혼자 도망쳐야 했다.
세 번째 음주 사건은 장비 본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관우가 죽은 이후 유비가 이릉대전을 선언하자 장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으리라 다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출전하는 모든 병사에게 흰색 갑옷을 입으라고 지시한다. 기한을 지키지 못하자 장비는 음주후에 책임자들을 구타했다. 결국 구타당한 부하들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장비를 죽인다.
이처럼 술과 관련해서 장비의 인생은 한마디로 주생주사(酒生酒死)라 하겠다. 도원결의 음주를 통해 형제로 태어났고, 한잔 술로 부정부패 항거하고, 다른 한잔 술로 쪽팔린 도주를 하고, 마지막 한잔 술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것이다.
물론 술버릇으로 크게 덕을 본 경우가 있으니 유비가 촉으로 진군할 때 장비도 한 몫 하는데 엄안이라는 장수를 술자리로 유인하여 사로잡은 것 이었다.
이처럼 유독 장비에게만 술 관련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장비는 당시에도 알아주는 빨간코 주당이었던 모양이다.
장비는 워낙 다혈질에 성질 급한 싸움꾼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싸움만큼은 맞수였던 여포에게는 없는 ‘의리’가 있었으며 여포에게는 더더욱 없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다.
별 볼일 없는 돗자리 장수 유비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은 물론이려니와 황제에 까지 올리는데 1등 공신이며, 제갈량의 신묘함을 확인한 후에는 업수히 여기지 않았으며, 군사 방통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뿐인가? 촉의 장수 엄안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회유하여 귀순 시킨 것 또한 기본적인 장비의 스펙을 150% 상회하는 결과였다. 또한 장판교에서는 비록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꾀를 내어 조조의 백만대군도 진격을 멈추고 장비에 눈치를 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장비는 처음엔 무력 위주의 테크트리 완성도만 보여주다가 점차소프트파워 부분의 성장마저도 보여주는 돋보이는 캐릭터가 된 것이다.
비록 주사가 심해서 문제가 끊이지 않았지만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의리의 장비였다.
세상 살다보면 이런 술버릇 가진 사람 한두명 알게 된다. 술 먹기 전에는 정말 말 잘 통하고 좋은 사람인데 술만 마시면 주사가 심한 사람들 말이다.
역시 교육의 문제라 본다. 술을 엉터리로 배워서 그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서는 자녀가 음주를 하게 될 나이가 되면 먼저 선수를 치시라. 술을 권하고 좋은 주도(酒道)를 익히도록 힘써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뚠자도 뚠뚠이를 그리 해보려고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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