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보는 소설 중 한 분야인 판타지라는 장르가 있다. 요즘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묵향을 좋아한다. 32권까지 보고 중단인 상태다.ㅠㅠ
서양의 판타지라고 하면 쉽게 공감이 가지만 동양의 판타지는 왠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협’이라는 장르로 접근을 하면 바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판타지(fantasy)라는 의미가 우리말로는 ‘환상’ 정도로 번역 될 것이다. 현실이 아닌 허상을 의미하는 것이니 마술이나 마법이 난무하지 않더라도 현실 세계와는 거리가 먼 내공이나 혈도, 장풍 등의 단어가 등장하는 무협소설도 판타지와 같은 것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뚠자가 실제 살면서 경험해보니 이 부분 역시 초반에는 동양쪽 판타지가 좀 더 우세했었는데 이제는 과학과 기술로 무장한 서양쪽 판타지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뚠자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무협지를 본격적으로 읽었다. 고교생 시절 맨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무협지 읽으며 낄낄대는 소리에 잠시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무사히 대학교 들어가고 나서 무협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시작은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하는 만화방에서나 주로 빌려보는 수준 낮은 무협지로써 대부분의 내용은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림 내부에 정파와 사파 세력이 충돌하는 와중에 어느 무술인이 기이한 인연으로 약초 혹은 선배 고수의 내공 전수 등을 통해 내공이 증가하고, 아울러 고수의 특급 지도나 무술 비법서를 얻어 천하 제일 고수가 되고, 결국 세력 간의 충돌을 불식시켜 평화를 가져온다는 구조 말이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당시 홍콩의 작가인 김용의 작품을 읽게 되면서 쓰레기 수준의 무협지가 아닌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무협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소오강호, 천룡팔부, 녹정기, 설산비호, 연성결 등 김용의 작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접어들었으며 나중에는 실제로 김용이 쓰지도 않는 소설도 사서 읽었다.
당시(90년대)는 저작권법이 다소 약했던터라 마케팅 목적으로 김용의 이름을 달고 나온 소설이 있었다.
물론 작품의 수준이 김용 본인의 진품들과는 차이가 많이 났지만 익숙한 주인공의 이름이나 무공 비급 혹은 무공 명칭을 다시 읽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만족스러웠던 시간들 이었기 때문이다.
뚠자는 당시나 지금이나 김용을 신필(神筆)로 인정한다.
저급했던 무협지를 당당하게 ‘문학’의 반열로 올라 놓았음은 물론이며 작품마다 유교, 불교, 도교 등이 아주 깊이 있게 스며들어 작품에 동양적 철학 배려가 있었다. 이는 중국인이 아니더라도 중국인의 사상적 원류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된다.
아울러 실존했던 인물이나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설 속에 투사하여 자칫 칼부림만 난무하다 끝날 것 같은 소설에 사실적 요소를 가미해 재미를 더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용의 작품들은 만화, 비디오, 영화, 드라마, 게임 등으로 제작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점이 바로 문제가 된다.
신필 김용이 죽은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무협물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김용의 인기 작품을 리메이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천도룡기는 거의 매년, 신조협려는 거의 격년(2년), 사조영웅전 3년마다 리메이크작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몇 년도작인지는 몰라도 뚠자가 본 양과는 유덕화가, 장무기는 양조위가 배역을 맡았었다.
의천도룡기에 출연했던 ‘조민’ 역의 여배우들만 모아서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몇 년도 조민, 몇 년도 조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무협물의 발전이 정체된 근본적인 원인을 뚠자는 무협이 가지는 내부 속성에서 두 가지 원인을 말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시대나 시간적 창작 공간의 제한이다. 아무래도 소림이나 아미파 같은 구파일방이 배경으로서 내용에서 빠지기도 어려우며, 현시점의 무협물이 작품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쉽게 돈 벌려고 코믹물로 흘러가 버렸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 이소룡-성룡-이연걸로 이어지는 맥이 끊겨버린 것이다.
두 번째는 무협이라는 장르 자체가 주인공의 발전에 한계를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영화든 소비자들은 주인공들의 성장에 열광한다. 1편의 성장을 보고 나면 2편에선 더 강해져야 한다. 해리포터나 아이언맨을 보면 금방 알수 있다.
그러나 맨몸 수련에 장풍이나 창, 칼등으로 얼마나 소비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까?
하지만 무협물의 대항마인 서양식 히어로들은 어떤가? 처음엔 단순한 쇳덩이 갑옷으로 시작했으나 아크 원자로를 가슴에 품고, 실시간으로 인공지능 컴퓨터의 조언을 들으며, 나노소재로 이루어진 슈트에 강력한 레이저 무기를 날아다니면서 발사한다. 거기다 마지막엔 지구를 구하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길까지 터준다.
이들도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힘을 두려워하며 엘프의 땅을 지나 힘겨운 모험을 했다.
나무 괴물과 동물 괴물들이 싸우는 혼란을 틈타 반지를 화산 용암에 던지면 끝나는 등의 시대적, 시간적 한계에도 갇혀있었다.
그러나 다음의 작가는 마술, 마법을 현대적 시대와 코드를 맞춘 <해리포터>를 내놓는 발전을 한다.
이렇게 거듭나면서 현대적 시대상과 코드를 연동하더니 현재 마블 전성 시대에서는 오히려 현실을 앞서나가는 세계관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런 상황을 보면 확실히 역사적 혹은 인류가 보여준 궤적이 오버랩 된다.
인구수 많은 중국이 초반에는 치고 나가지만 결국 발전시키는 것은 서양 아닌가하는, 서양 우월주의 시각이 되는 건 뚠자 만의 착각인가?
아직도 <삼국지> 제갈량이나 <의천도룡기>의 장무기라는 이름을 들으면 찬란했던 청춘시절을 떠오르는 뚠자로서는 더 새롭게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이 보이는 무협 분야가 안타까워서 한 마디 해 보았다.
요즘 잘 나가는 첨단기술 중의 하나가 유전자가위(CRISPR)이다. 지난번 소개한 빌 마키 번의 <폴터: 휴먼 게임의 위기>나 소개 예정인 제니퍼 다우드나의 <크리스퍼가 온다>를 보면 유전자가위라 부르는 이 기술이 얼마나 우리의 실생활 옆에 바짝 다가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오늘 뚠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 유전자 가위라는 기술의 세세한 실용적 내용이나 위험성 혹은 그 기술적 가치나 향후 전망 등을 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전체적인 느낌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부친과 모친 양쪽으로부터 유전자를 제공받아 성장한 결과물이다. 그 유전자에 담긴 내용의 구체적인 발현으로 키, 피부색, 두뇌의 명석함은 물론 성격 등에까지 이르른다.
유전학자들에 의하면 거의 유전자에 의해 정해진 내용대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물론 성장과정에서의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 구체적인 발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 두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주장은 대부분 타당성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키가 2m 이상 거인이 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성장기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혹은 못했다면 2m는 커녕 180cm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아이큐 150을 넘어 180까지도 갈 수 있는 기능성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도 아프리카의 어느 내전이나 분쟁 지역의 아이여서 아무 교육도 받지 못한다고 하면, 좋은 머리는 구현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거디다 ‘돌연변이’라고 하는 특수 상황까지 일어나면서 100% 유전자에 없던 상황까지도 벌어진다. 그러므로 이런게 유전자대로 발현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잘못된 학문이라고 매도하지 않고 오히려 과학적 관찰 결과라고 동의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뚠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이라서 말이다. 유전자라고 하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더 비싸고 성능 좋은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가방끈 긴 박사들이 ‘유전법칙’을 발견한 멘델 이후 무려 300년이라는 오랜 시간 연구해온 학문인 유전 과학이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뚠자는 생각한다.
초점을 옮겨 보도록 하자. 흔히 사주팔자라고 불리우는 동양철학은 심심풀이나 혹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마지막 수단으로 취급되는 분야 중 하나로 여겨진다.
단지 태어난 년, 월, 일, 그리고 시간만으로 거의 대부분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보는 그 분야말로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며 행여 사주명리 기문둔갑 등의 구체적 기술을 적용하여 풀어낸 결과물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엉터리라고 낙인찍기 십상이다.
왜 그럴까? 가방끈이 길지 않을 수도 있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복채 몇 만원에 어느 사람은 인생 전반에 걸친 사안에 대해 엉터리 조언을 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식 학교에서는 배운 적이 없어 학문으로 보기엔 다소 허무맹랑해 보이는 잡기술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
물론 뚠자는 소위 말하는 역술인이 아니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동양철학의 일부인 기문둔갑 그 중에서도 지극히 이론의 일부 내용만 배웠을 뿐, 돈을 받고 누구의 사주를 보거나, 업(직업)으로 삼아 본 적은 없다.
그리고 평소에도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잡담을 시간 들여 길게 쓰는 이유는, 개인적인 작은 깨달음을 잊기 전에 적어두고 누군가는 같은 삶의 궤적에서 이걸 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해서 몇 자 적어 보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가 한 사람의 삶의 기본이 되는 신체적 사양(하드웨어적 사양)을 정리해 놓은 것이며 이는 인생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본다.
반면 동양철학의 사주팔자 역시 그 사람의 삶에 기본이 되는 ‘인생의 길’ 방향(소프트웨어적 내용)을 정리해 놓은 것이며 이 역시 인생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생각을 해본다.
에이 그거 사주보는 사람마다 다 말이 틀리고 심지어 구체적 사안에 대한 결과도 자주 틀려서 엉터리 아니냐며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전공학자도 사람에 따라 기술 수준 차이가 있으며 장비나 적용 방법에 따라 그 결과도 예상과 다른 경우가 상당수 존재 하지 않던가? 사주팔자 역시 성장과정에서의 환경과 사주팔자 운을 보는 역술인의 내공수준의 차이로 인해 맞고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비록 동양철학, 아니 사주팔자 운수를 보는 법이 서양과학에 밀리긴 했으나 이는 최근300년의 이야기 일뿐이다.
동양 철학은 수천 년을 걸쳐 당대 최고의 두뇌를 가진 이들이 고심하며 연구해낸 결과물이다. 염색체 23쌍으로 인간의 평생 특징을 확정짓는 것이나 사주팔자 여덟 글자로 평생에 걸친 운명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거의 비슷한 것이라고 본다.
뚠자가 이런 생각에 도달한 배경은 물론 개인적인 경험도 그렇거니와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한 ‘점 연결’ 연설 덕분이다.
그리 길게 산 인생은 아니지만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우연히 떠오른 생각이다. 유전공학과 사주운세는 방법론적으로는 거의 같다는 생각 말이다.
기존에 일방적으로 정리 당했던 유의미한 것(유전공학)과 무의미한 것(사주팔자)도 다시금 서로 연결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답해 본다.
무엇을 깨달았기에 이리 큰소리 치고있나 하겠지만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며 그 내용도 사족이 길어질 것 같아 다음에 정리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