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조조

2020. 12. 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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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조조 차례다. 다들 알겠지만 맹덕이라는 자를 가져서 <맹덕신서>라는 책도 지었다. (이 책은 나중에 장송에게 개망신 당한다.) 어릴 적에는 아만이라고도 불렸다.

 

역사적 위인에게는 장점이 많다. 2,000년 가까운 옛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조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제일 기본인 총명함에다 결단력까지 갖췄으며 거기에다가 과감하기까지 하다.

 

조조는 어릴적 허자장이라는 당대의 유명한 관상가로부터 치세에는 능신, 난세는 간웅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무척 좋아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총명함을 보여 준다.

 

또한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여백사네 집에 들렸다가 오해로 그 가족을 다 죽인 후에 진궁에게 내가 세상을 버릴 수는 있어도 세상이 나를 버리게 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 부분에서는 결단성 과감성을 보여 준다. 거기다가 인간 조조의 잔인함까지 보여 준 것은 당연하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자기 부하로 데려오려는 인재 욕심만큼은 오늘날의 기업 CEO나 정치 지도자들이 본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조조에게 문무(文武) 양쪽의 인재들이 몰렸음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이 곧 3국의 국력 차이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조조하면 임기응변의 달인임을 빼 먹어서는 안 된다. 군대 행군 도중 갈증으로 지친 군사들을 달래기 위해 산 고개 너머에 신맛 나는 매실 이야기로 입에 침이 고이게 하여 무사히 행운을 마친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가 망매해갈(望梅解渴).

 

또한 화용도에서는 관우에게 무릎 꿇고 눈물로 목숨을 구걸 하는것까지 거침없는 행보는 그의 변화무쌍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강을 만나면 원칙을 고수하며 멀리 돌아가는 유비의 따분함을 느끼는 독자라면, 다리를 만들어 빠르게 직진하는 조조에게서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거침없는 조조가 딱 한 가지 망설인 것이 있으니 바로 황제가 되는 것 이었다. 허수아비 황제를 겁박하고 황후는 죽이기까지 했지만, 조조 본인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로 가기는 거부했다.

 

황위를 찬탈한 역적이라는 운명을 자신이 뒤집어쓰기는 싫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조조가 죽은 후 그의 큰아들이 황제가 되었으나 그것은 조조가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평생 인재를 구하기 힘썼고, 또한 그 만큼 사람에 대한 의심도 많았던 조조는 사마의를 알아보았다. 그래서 다른이 즉 유비나 손권의 부하가 되지 못하게 반강제로 자신의 부하로 불러들였지만 실질적으로 중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가 되면 봉황이 날아오르고, 바지속의 송곳도 날카로움을 드러내듯이 조조 사후 사마의가 결국 조씨 가문을 상대로 이겨 사마의는 손자 사마염 황제로 앉히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천하제일 기재였던 양수를 계륵이란 말 한마디로 그 싹을 잘랐는데 왜 조조가 사마의는 그대로 살려두고 중용하지 말라고만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여백사 가족을 몰살할 때나 양수를 죽일 때보다 더 나이 들면서 인간적으로 더 너그러워진 까닭이리라.

 

실력 위주의 인재 기용과 안정적인 내치와 실속있는 임기응변 전략구사 등은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조조를 보고 배우도록 만드는 점이다.

 

현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성공했을 스타일이다. 조조를 향해 엄지척 한 방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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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술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식사이며, 음료수이자, 기쁨이요 슬픔 그 자체다. 삼국지연의에도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유난히 많은 장수가 한 명 있다. 바로 익덕 장비다.

 

의형인 미렴공 관우와는 달리 무척 까칠한 수염을 길렀던 모양이다. 여타 작가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삼국지에서 장비의 수염을 따끔따끔한 밤송이 껍질에 비유 했으니 말이다.

 

뚠자가 기억하는 장비의 첫 음주 장면은 도원결의다. 역시 첫 만남이라 장비도 무척 조심스러 웠나보다. 큰 문제는 없이 훈훈한 형제의 출발이 묘사되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황건적을 토벌하고 논공행상에서 정규군이 아니었던 유비는 공적에 비해 다소 초라하게 조그마한 고을 현령이 된다.

 

매관매직등의 부패가 만연하던 시기였던지라 황제의 칙사 독우라는 자가 감찰을 하러와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으며 뇌물을 요구했다. 이런 모양을 며칠을 참다가 드디어 장비가 폭발한다.

 

음주 후 나무에 칙사를 묶어놓고 죽일 듯이 채찍질한 것이다. 그 일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조용히 잠수타기 신공에 들어갔다.

 

두 번째 음주 사건은 장비에게 본진을 맡기고 유비가 관우와 전투를 벌이러 나간 사이에 벌어졌다. 참아 보려고 했지만 장비는 음주를 하게 되었고 주사를 부리다 부하를 구타하게 된다.

 

억울하게 맞은 부하는 여포에게 본진을 급습하도록 성문을 열어주었다. 장비는 유비 관우의 가족도 내버려둔 채 혼자 도망쳐야 했다.

 

세 번째 음주 사건은 장비 본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관우가 죽은 이후 유비가 이릉대전을 선언하자 장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으리라 다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출전하는 모든 병사에게 흰색 갑옷을 입으라고 지시한다. 기한을 지키지 못하자 장비는 음주후에 책임자들을 구타했다. 결국 구타당한 부하들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장비를 죽인다.

 

이처럼 술과 관련해서 장비의 인생은 한마디로 주생주사(酒生酒死)라 하겠다. 도원결의 음주를 통해 형제로 태어났고, 한잔 술로 부정부패 항거하고, 다른 한잔 술로 쪽팔린 도주를 하고, 마지막 한잔 술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것이다.

 

물론 술버릇으로 크게 덕을 본 경우가 있으니 유비가 촉으로 진군할 때 장비도 한 몫 하는데 엄안이라는 장수를 술자리로 유인하여 사로잡은 것 이었다.

 

이처럼 유독 장비에게만 술 관련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장비는 당시에도 알아주는 빨간코 주당이었던 모양이다.

 

장비는 워낙 다혈질에 성질 급한 싸움꾼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싸움만큼은 맞수였던 여포에게는 없는 의리가 있었으며 여포에게는 더더욱 없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다.

 

별 볼일 없는 돗자리 장수 유비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은 물론이려니와 황제에 까지 올리는데 1등 공신이며, 제갈량의 신묘함을 확인한 후에는 업수히 여기지 않았으며, 군사 방통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뿐인가? 촉의 장수 엄안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회유하여 귀순 시킨 것 또한 기본적인 장비의 스펙을 150% 상회하는 결과였다. 또한 장판교에서는 비록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꾀를 내어 조조의 백만대군도 진격을 멈추고 장비에 눈치를 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장비는 처음엔 무력 위주의 테크트리 완성도만 보여주다가 점차소프트파워 부분의 성장마저도 보여주는 돋보이는 캐릭터가 된 것이다.

 

비록 주사가 심해서 문제가 끊이지 않았지만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의리의 장비였다.

 

세상 살다보면 이런 술버릇 가진 사람 한두명 알게 된다. 술 먹기 전에는 정말 말 잘 통하고 좋은 사람인데 술만 마시면 주사가 심한 사람들 말이다.

 

역시 교육의 문제라 본다. 술을 엉터리로 배워서 그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서는 자녀가 음주를 하게 될 나이가 되면 먼저 선수를 치시라. 술을 권하고 좋은 주도(酒道)를 익히도록 힘써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뚠자도 뚠뚠이를 그리 해보려고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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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오늘은 삼국지의 많은 인물 중에 비주류 인물 한 명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바로 문제아 여포다.

 

삼국지에서 유래된 말 중에 마중적토 인중여포라는 말이 있다. ()들 중에서는 적토마가 가장 뛰어나며 사람들 중에서는 여포가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말이다. 무엇이 뛰어나다는 말인가 하니, 장수로서 말 타고 무기 들고 일대일 대전을 벌이는 능력이 뛰어남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싸움 기술에 최고 수준이라는 여포가 힘과 속도에서 당대 최고라는 말인 적토마의 조합이니 으뜸 아니겠는가? 적토마를 탄 여포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 했겠는가?

 

사실 삼국지 연의를 보면 일대일 대전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여포라는 명성에 비해 실제로 승리를 거둔 유명한 장수는 의외로 드물다. 여포의 대단함을 보여주는 장면은 주로 장비와의 대결이었던듯 싶다.

 

여포는 장비와 두 번이나 맞짱을 떴다. 처음 대결에서는 시종일관 팽팽했으나 다소 여포가 우세한 듯 나온다. 결국 관우와 유비가 가세하면서 3:1 싸움이되자 여포가 피하면서 승부를 보지 못했다.

 

두번째는 싸움에서도 다시 1:1로 싸우는데 이때는 '쪼다' 형님 유비가 장비를 불러들여 승부를 보지 못했다. 불꽃튀는 승부였으나 장비가 실수할까봐 불러들였다고 묘사되어 있다.

 

두번 모두 여포는 좋은 말을 타고 싸웠으니 뚠자가 보기에는 장비의 판정승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할리데이비스와 스쿠터를 탄 사람들의 대결을 상상해 보면 될까 싶다. 마상에서의 칼싸움 시절 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몇 번만 치고 빠져도 일반 말들은 지칠 텐데 적토마가 요리조리 달려 주며 상대를 압박 하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이점이겠는가?

 

두 번이나 붙었던 장비에 입에서 삼성가노(三姓家奴)라는 욕이 튀어 나왔단다. 성씨를 세 개나 갖게 된 종놈 이라는 욕이다. 오로지 직진만하는 장비의 성격상 여포같은 인격을 보면 당연히 쌍욕이 나올법하다. 여포가 뛰어난 싸움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비주류가 된 이유는 그를 거두어준 사람을 배신하고 죽이기를 두 번이나 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말이다. 이처럼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배신을 일삼는 자를 누군들 믿고 파트너로 삼으려 하겠는가?

 

의외로 진궁이 여포를 도와보려 했으나 여포는 항우급 인물이 아니었고 진궁은 범증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아니었다. 여포는 작은 이익 추구에 급급한 나머지 본인의 명성이나 상호 신뢰에 금이 가는 것은 신경 안 쓴 인물인 셈이다. 거시적 안목으로 현재 사안을 판단하고 명분을 지키고 큰 일을 도모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여포가 만약 명예를 존중하고 의리를 중하게 여겼다면 관우나 조자룡 같은 명성을 후대에 남기는 것은 물론 삼국지 연의의 내용 자체도 수정을 해야 할 만큼, 실제 역사도 크게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여포가 첫 번째 양부 정원을 배신한 이유는 명마를 탐해서였다. 말을 탐내 양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똑같은 적토마였음에도 미렴공 관우는 말 선물을 받기는 하되 주군인 유비를 향한 충심을 버리지 않았으니 참으로 비교된다.

 

여포가 두 번째 양부인 동탁을 배신한 이유는 초선이라는 미녀 때문이다. 연의에 나오는 이 초선이라는 미녀는 실존 인물은 아니라고들 한다. 아무튼 여포는 동탁의 시녀와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이유로 둘 사이가 틀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탁은 여포에게 죽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꾼 나관중은 여포를 기막힌 로맨티스트로 만들어 주었다. 사랑을 위해 배신을 선택했다며 말이다. 좋게 포장해서 로맨티스트이지만 한낱 싸움꾼이고 호색한이며 배신자일 뿐이다.

 

마지막엔 기개마저도 버린다. 결국 조조와의 싸움에 여포군이 패하자 여포의 부하였던 진궁은 당당히 죽음을 요구한다. 하지만 여포는 여기서도 살아 보겠다고 조조에게 부하로 삼아 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여포의 무장으로서의 가치에 미련이 있던 조조가 주저 할 때 의외로 인간성 좋다는 유비가 단호하게 말한다. “정원이나 동탁의 전철을 보지 않았소?” 너무나 이성적이라는 조조의 주저함과 온화하다는 유비의 냉정한 결론이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삼국지 연의의 일진 중에서도 원탑이었던 여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이 경박하여 비주류로 전락하더니 끝내 비참한 최후로 일생을 마감한 여포를 보며 많은 어린 독자들이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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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삼국지가 황건적의 난을 기술하며 시작한다. 아울러 유비가 등장하고 이어 그 유명한 도원결의가 이뤄진다. 따라서 삼국지의 주인공 중에서 단연 유비에 대한 언급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대부분 나관중 삼국지의 시각과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들 하지만 작가의 시각에 따라 상당한 주관적 평가도 따르게 마련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설민석의 삼국지'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지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에 대해 상당히 후한 평가를 해 주었다. 20여년전에 읽은 '이문열의 삼국지'를 보면 굉장히 실용성을 중시하며 조조는 치켜 올리고 유비는 한없이 까 내린다. 이런 경향은 30여년 전에 읽은 '고우영의 삼국지'에서는 더욱 잘 나타나는데, 유비를 아예 '쪼다'로 부르기까지 한다.

 

작가의 원전 재해석은 나름의 시각이 반영되는 것이므로 읽는 재미가 있다 하겠다. 뚠자도 뚠자의 시각으로 유비를 표현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유비는 그저 시골의 돗자리 장수였다. 비록 황제의 먼 친척이라고 하지만 '중산정왕의 후예'라고 하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중산정왕의 아들만 120여명이라니 그 후예라고 해서 특별한 신분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기다, 아버지가 일찍 죽었으니 집안 사정이야 뻔할 것이고 그래서 돗자리짜며 연명했을 것이다.

 

그런 유비가 후에 3분의 1만큼이긴 하지만,  황제의 자리까지 올라갔으니 자수성가한 입신 양명은 인정해 주어야 마땅하다. 동네 이장쯤에서 중국 전체를 거머쥔 한고조 유방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공적이라 뚠자는 생각한다.

 

흔히 유비는 민중의 아픔을 생각하며, 민중과 함께한 군주로 여겨진다. 제일 극명하게 표현된 곳이 조조가 형주를 공격해오자 유비 일행이 신야성을 나와 도망칠때 백성을 버리고 먼저 빨리 도망가자고 하는 말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백성과 함께 도망친 부분이다.

 

이 부분이 진심이었던 의도적이었던 유비는 민심과 함께 한다는 결정적 대중 지지도를 갖게 된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부인 하나가 죽고, 갖 나은 아들마저도 별거 아니라는 듯 내동댕이 치며 조자룡의 안위를 걱정함에 대중의 지지도 상승도 상승이지만, 적극적 지지자인 부하들의 충성심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게 된다.

 

'아! 저런 사람의 부하구나 우리는...' 하는 생각을 갖는 부하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된다.

 

따라서 뚠자의 입장에서는 조조만큼의 업적은 안되니 별 볼일 없다거나 심하게 '쪼다'로 까지 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유비는 유비만이 가진 캐릭터적 매력으로 대중의 지지도와 열성 부하들의 자발적 충성 지원덕에 무명의 돗자리 장수에서 황제의 반열로 간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로 이름을 남겼으니 말이다.

 

뚠자는 유비의 덕망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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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대전, 삼국지에 등장하는 최대규모의 전쟁중 관도대전, 적벽대전에 이은 3번째 전쟁이다.

관우의 죽음이후, 제갈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있는 병력 없는 병력 다 긁어모아 손권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다.

 

손권측에서는 여몽의 급사(갑작스런 죽음)로 인해, 젊은 육손이 대장에 임명되어 싸움에 임하게 되니 촉에서는 유비가 오에서는 육손이 전쟁을 진두 지휘하는 형국이다.

 

초반의 기세는 복수심에 불타는 촉군에 유리하였으나, 지루할 정도로 침착한 육손의 대응에 차츰 예리함이 무뎌진 촉군은 한여름 더운날씨에 시원한 숲속으로 군영을 옮기며 더위를 피하려 한다.

 

그러자 지금까지 일부러 후퇴를 거듭하며 기회를 노리고있던 육손은 화공으로 숲에 불을 질러 100만 대군 유비군을 거의다 불에 태워 죽인다.

 

유비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울화병에 걸렸고, 만류하던 제갈량을 만나볼 염치가 없어 상당기간을 접경지대인 백제성에서 머물다가 죽고만다.

 

이 싸움이 갖는 의미는 적벽대전 만큼이나 크다고 생각한다. 적벽대전이 잘나가던 조조의 위세가 꺾이며 유비의 상승세를 이끌어냈다면, 이 이릉대전은 잘나가던 유비군이 대규모 병력 손실과 함께 확장의 기세가 꺾였다는 점이다.

 

조금 더 참고 그 병력을 더욱 조련하여 먼저 동오와 연합하여 다시 한번 위와 결전을 벌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울러 이 전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 초반의 주인공인 유관장 의형제들이 모두 죽으면서 1세대들의 퇴진이 가속화되고, 제갈량, 사마의 등 2세대들의 전면적 등장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삼국지 3대 전쟁을 모두 살펴보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불에 의해 결정적 전투에서 승부가 갈렸으며, 모두 수비하는 입장에서 승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역시 공격은 함부로 할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kSNCO1tHW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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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읽다보면 무척 많은 전쟁들이 나온다. 황건적과의 전쟁, 동탁 vs 연합군의 전쟁, 원소 vs 조조의 전쟁등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흥이나며 제갈량의 가세로 각국의 참모가 초절정 상태의 지략 대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적벽대전은 가히 원탑으로 불릴만한 전쟁일 것이다.

 

특히 특히 형주를 거점으로 하며 조조군과 맞써 싸울 상황도 될법했던 유비가 군자의 길을 걷는 바람에 조조는 너무나 손쉽게 형주를 차지한다. 여기서 다들 유비를 쪼다라고 한다.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유비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안전을 확보하고 민심을 수습하며 자신에게 충성할 군대를 만들기에는시간이 너무 부복한 것이었다. 조조가 기다려 준다던가? 유비도 나름 멀리 한수 내다 본 결정이었으리라. 거기다 명분도 있지 않은가? 형제의 땅을 취할 순 없노라....ㅋ

 

그러니, 조조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싸움없이 형주까지 차지하고 보니 내친김에 천하통일을 이루고자 하였던 것이다. 물론 장강이 최대 장벽임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나 내버려 둘수만도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진행 국면을 들여다보면, 조조 vs 유,손 연합 대결보다는 오히려 제갈량과 주유의 대결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천하를 노리는 유, 손 두 진영의 최고 수뇌부의 지략 대결은 적벽대전 서막부터, 전쟁 후 주유가 죽을때까지 이어진다.

 

초반에 제갈량의 동오를 방문하면서 주유는 제갈량을 떠보려하지만, 오히려 주유 부인을 들먹이는 제갈량의 심리전에 말려들어 흥분하며 선수를 빼앗긴다. 이후, 화살 10만개, 동남풍 사건, 형주 장악, 유비와 손상향의 결혼 등 모든 부분에서 주유는 제갈량에게 매번 당하고 만다. (제갈량은 이와중에 또 다른 라이벌 관우를 완전히 제압한다.)

 

허풍과 과장이 있겠지만, 소설로만 대한다면 제갈량은 거의 신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므흣)

 

적벽대전에는 복룡봉추 중의 한명인 봉추 방통도 등장해 한몫하고 대기 모드로 들어간다. 장강은 중국에서 항하와 더불어 어마어마하게 큰 강이다. 이곳에 육지에서만 싸움하던 병사들이 물결의 흔들림에 중심을 못잡고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조조군을 아무 의심없이 배를 서로 묶어 파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고 설득한 이가 바로 방통이었다. 이후 방통은 의외로 동오에서 크게 대접을 못받게되자 유비를 찾게 된다.

 

아무튼 전쟁은 벌어졌고, 적벽에서 조조는 대패하고 그 기세가 꺽인다. 조조의 생애에서 천하통일은 물 건너 갔음을 조조도 느끼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전쟁으로 유비는 형주를 차지하며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특히 내실있는 행정을 바탕으로 인물을 정비하고 군대를 정비하여 추가로 서촉까지도 얻게된다. 유비 세력이 국가급으로 눈부시게 성장하게 된 배경은 적벽대전이었다.

 

한편 전쟁을 압도적 대승으로 마무리지었으나 결과적으로 얻은게 없는 손권측은 상대적 박탈을 느끼며 형주를 차지한 유비가 배아픈 상대가 된다. 틈만 나면 유비가 차지한 형주를 노리게 되며, 둘 사이에는 협력하기 어려운 보이지않는 틈이 생기게 된다. 이는 삼국지 3대전쟁의 마지막인 이릉대전의 불씨가 된다.

 

다음 동영상은 뚠자가 아들 뚠뚠이와 적벽대전에 대해 나눈 이야기입니다.

PPT로 자료를 보면서 이야기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6DYakURf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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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시간적 배경(연대표)

뚠자는 근대 이전의 국가는 분산된 권력이 하나로 집중 시기에 성립이 되고, 집중된 권력이 다시 분산되는

과정에서 해체된다고 정의하고 싶다.

 

삼국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중국 한나라의 말기는 바로 이처럼 천자(황제)에게 집중된 권력이

주변의 내시들, 나아가 지방의 영주들로 옮겨가는 상황을 잘 묘사하며 시작한다.

 

특히, 지방의 영주들에게 권력이 분산되는 그 과정에 황건적의 난과 십상시의 난 2가지 사건이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장기판을 보면 초나라는 녹색이고 한나라는 붉은 색임을 볼 수 있다. 초한지 시대부터 깃발을 그리 사용하

였던 모양이다. 붉은 색은 불(火)을 뜻한다. 따라서 한 왕조 말기에는 음양오행의 순서에 의해 흙(土)의 색인

노란색을 띄는 세력이 이어 받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 모양이다.

 

그래서 머리에 노란 두건을 한 백성들이 농기구대신 병장기를 집어들고 일어선 민란이 바로 황건적의 난이다.

중앙 정부 입장에서는 대규모 민란이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지 못하니 당연히 반란군으로 지목하고 토벌에

나서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지방 영주들이 군권 세력들로 급부상하게 된다. (원소, 조조, 동탁 등...)

 

어찌어찌 황건적의 난이 진압된 이후, 중앙 정부는 다시 권력 놀음에 나서는데 무능했던 황제의 죽음 이후,

권력의 획득을 노리는 외척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내시 집단의 암투가 결국 십상시의 난으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지방 영주중 야심가인 동탁이 권력을 틀어쥐면서, 다른 지방 영주들에게도 '나도 한번?' 이라는

야망을 갖게 하면서 거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재미있게 펼쳐진다.

 

여기서 유비는 명가의 자손(금수저)이 아닌 시골 깡촌의 돗자리 장사꾼에서 출발하여 계속 레벨업을 하여

요즘말로 만랩에가지 이르는 대단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비록 이문열 작가나 고우영 화백에게 욕을 먹는

케릭터로 묘사되지만, 과연 능력없이 만랩이 될 수 있을까 싶다.

 

주요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뚠자는 권력도 살아있는 것이라 본다. 권력도 오래 고여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권력은 이동을 하기 마련이다.

 

지금 전 지구적으로나(미국과 중국 나아가 서양과 동양) 국내적으로나 권력은 아주 큰 이슈를 점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겐 거대한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시금 삼국지가 내게 지혜로운 답안을 미리

살짝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오늘도 들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_XNIoJpro7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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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too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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