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군과 변치 않는 인간의 본성
2021년 공군에서 복무하던 어느 여군의 자살이 대한민국을 시골벅적하게 만들고 있다.
성희롱과 수치심, 근무지에서의 압박과 회유 그리고 형편없었던 법적 보호 장치들의 배신이 젊은 여군을 자살하게 만든 모양이다.
당사지 입장에서 보면 슬프고도 억울한 일임에 분명하다.
선사시대보다 나아지고, 고려 · 조선 시대보다 나아지고, 1900년대보다 나아진 2021년 이건만, 아직도 억울하게 성희롱 · 성폭력을 당하고 수치심에 분노하는 삶이 어디 그 여군 한명 일까 싶다.
대부분의 생명체에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행동 특성 중의 하니가 바로 ‘번식’이다.
지상 생명체중 상상수가 수컷이 암컷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수컷끼리 혹은 수컷과 암컷 간의 폭력도 발생하다.
‘번식’ 앞에서는 폭력마저도 정당화되는 것이 생명체의 삶이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런지 종종 남자가 물리력을 행사하여 여지를 강제로 취하려 해왔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다.
수십만년을 남성 중심의 사회체제에서 지내왔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개념을 정립하고 사회체계가 그에 맞추려 노력하지 100년도 지나지 않았다.
남녀에게 많은 부분에서 불평등 요소가 제거되어 왔다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또한 완벽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교육을 받아도 신체 구조에서부터 개체의 크기나 물리적 완력이 다른것을 어쩌란 말인가?
하물며 가장 전통적 가치관이 유지되고 있는 군대 내부에서의 인식은 어떻고 말인가?
교육을 받긴 했지만. 생물학적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가지 형태로 표출되는 것을 볼수 있다.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생기는 비만처럼 ‘번식’ 행위인 성욕도 마찬가지다.
탐해서는 안되는 이성을 탐하는 행위 역시 생물학적 본성의 발현이다.
당연히 번식의 습성을 이겨내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행위를 눈감아주거나 두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를 벗어나기 전에 인간은 육체를 벗어나 영생의 길로 인간 중 일부는 옮겨 갈것이라는 요즘 세상에 과연 '번식'이 주는 즐거움을 버리고 로봇의 몸체로 정말 인간이 옮겨갈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유발 하라라의 <호모데우스>나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를 보면 수십년 이내에 인간이 육체를 벗어 던질 듯이 묘사하고 있어서이다.
하지만, 뚠자가 보는 관점은 제니퍼 다우드나의 <크리스퍼가 온다> 처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성욕 유전자를 적당하게 조절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싶다.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
연산군이 공자나 맹자를 배우지 않아서 그렇게 폭군에 호색한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아무리 교육을 받아 분들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계수 나올 수 밖에 없다.
조두순에게 당한 꼬마 여아부티 성인인 여군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성교육 노력과 돈이 들어갔는가? 그리고 고 결과는? 그대로 수준 아닐까?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도 자신의 집무실에서 부인 몰래 그랬을 정도니 '번식'을 위한 노력 만큼은 결코 교육에 의해 감화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교육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임을 안다.
교육이 효과가 낮다고 해서 포기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다만 형량은 늘리자. 벌금을 강화하자. 전재산 몰수해서 피해자에게 주도록 말이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하면 성범죄가 잡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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