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별별일 다 겪지만 아직 적절한 시기가 도래하지 않은 상황에서 듣게되니 다소 황당한 생각이 들어서 몇자 남겨보려 한다.
<로봇 학대>라는 말이 대한민국 일간지에 등장해 화려하게 인터넷을 달구었다.
무슨 상황에서, 무슨 의도를 가지고 기자가 이런 단어를 구사하게 되었는지까지는 말할 가치가 없어서 논하고 싶지 않다. 너무 정치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단지 비정상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에 깊이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다만 이런 단어가 정상적으로 받아들여 지려면, 적어도 <로봇>이 우리(여기서는 인간)이 인정하는 수준의 감성적 상태까지 도달한 ‘상대’라야 한다고 뚠자는 생각한다.
인간이 가축을 학대하는 경우에 예상되어지는 상대 가축이 고통을 느껴 눈물을 흘린다거나 비명을 지른다거나, 본능적인 도망이나 발버둥같은 움직임이 있다거나 하는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서의 기본적 생명 유지를 위한 몸부림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로봇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언론에 나온 바로 그 <로봇 학대>의 주인공인 로봇은 단순히 프로그래밍 되어있었으며 뒤집어도 일어나서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억 장치에 충격이 가해져 동작 불가 상태이거나 전원이 나간 경우 등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무조건 정해진 프로그램 논리대로 동작될 것이다.
일부 제한적인 판단, 예를들면 넘어진 상태이니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바로 잡자와 같은 본 목적 이외에는 부가되지 않은 자의적 판단은 불가하며, 기쁨이나 슬픔 공포 두려움 환희와 같은 감정도 느끼지 못할 것이며, 생물학적 배고품 피로감 같은 것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테스트 목적으로 한번 거칠게 뒤집은 것이 아닌 그것보다 더 심하게 몽둥이로 패거나 총으로 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시대의 로봇에게 총을 쏘아 망가뜨리면, 재물손괴는 가능하나 살인죄가 될 수 없음이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언제쯤 로봇에게 심하게 대하면 <로봇 학대>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아이로봇>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영화는 윌 스미스와 한 로봇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 로봇이 바로 자아를 느끼게 되면서 여러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줄거리로 하는 영화다.
인공지능이 더욱 활성화 혹은 심도깊은 연구 개발이 이뤄져 자아를 느끼는 로봇이 나온다면 바로 그때부터 <로봇 학대>를 막기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로봇이 더 강해져 오히려 로봇에게 인간들이 학살을 당할 상황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말이다.
뚠자가 자주 언급하는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커즈와일처럼 바로 로봇에게 인간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이 <로봇 학대>라는 말은 얼마나 부적절하게 선정된 단어인지를 알 수 있다.
아마 <학대>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리라.
더 웃기는 건 그에 동조한 고려대 교수라는 사람이다.
학자라면 상당한 지식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이러한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렇게 어설프게 동조하였다는 점이 말이다.
전에 소개한 <생각을 빼앗긴 세상>의 저자는 현직 언론인으로서 점점 커져가는 알고리즘의 영향력에 의해 언론인의 고유한 직업적 위치를 알고리즘에게 빼앗겨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며 그 대안을 찾아보고자 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자신의 직업인 수학 연구가 결국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될 것인지에 대하여 불안해하며 미리 알아보고자 했다고 한다.
알고리즘의 원조격인 에이다 러브레이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살펴보며 아직까지는 걱정이 없노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저자는 창조적 능력에 대해 상당히 의미를 부여하며 중요시하고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 있어서 2번째 판 37수, 미술에 있어서의 렘브란트 작품, 음악에 있어서의 바흐풍의 작곡, 수학계의 미자르 프로젝트, 문학계의 시나 소설 등의 작품과 같이 인간이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여 만들어낸 결과나 작품을 알고리즘에게 학습한 후 수행하도록 하고 그 결과물을 검토하였다.
이 책은 그런 여러 분야에서 창조품과 학습 후 모방풍을 비교하며 아직까지는 인간이 우위에 있음에 안도하며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정말 안도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현재 알고리즘에게 ‘참교육’ 받고 있는 뚠자로서는 IQ가 극히 낮은 현재의 알고리즘이 IQ마저 높아지면 과연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자주 들기 때문이다.
초지능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더 하고 오늘은 이 책 이야기에 집중하겠다.
음악에 수학과의 연관성이나 수학과 알고리즘의 연관성을 다룬 부분은 참으로 적절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뚠자가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어떤 음악을 듣다가 흥이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떤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곧 화음이고, 수식적인 아름다움일 것이다.
반면 그림에 대해서는 아직 알고리즘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멀지 않았나싶다.
음악이 1차원적인 데이터 정보처리였음에 비해 그림은 엄연한 2차원 정보처리라고 뚠자는 생각한다.
1차원 처리 보다는 2차원의 정볼르 처리하여 조화롭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궁극적인 요소는 바로 인간의 심성에서 발생하는 감흥이나 모티브 같은 것 없이 학습을 통한 모방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 학습절차 또한 인간이 배우는 방식이 아닌 다량의 완성된 것만 보고 얻어낸 기계적 학습이기 때문에 충분한 내적 충만함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과정이 결여된 학습으로 얻은 능력에 의해 만드는 결과물이라 한마디로 비유하자면 정물화를 그려내라고 했는데 사진을 찍은 것과 같은 작품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정물화와 사진은 서로 다른 차원이다.
그러므로 기계에 의한 창조품은 앞으로 사진이 정물화 수준까지 되어야 할 것이고 언젠가는 추상화까지도 되어야 될 것이다.
또한 그 분야는 비단 미술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로 확장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심 된다며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은 10년 이내의 근시안적 미래에 대해 적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가치는 있다. 사실 멀리 내다봐야 불확실성만 높아지므로 수학자에게 딱 적합한 수준까지만 조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알고리즘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알고리즘은 주어진 상황에서 일련의 행동이나 행위를 하는 과정을 컴퓨터 코딩이나 수학적 수식으로 풀어낸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배고픔을 느끼면 뭔가 음식을 먹어야한다. 이것이 작동하지 않으면 생존에 치명적 문제가 생긴다. 목이 마르면 마신다. 졸리면 자야한다. 인간은 물론 대부분의 동물에게 일어나는 생체적 알고리즘이다.
좀 더 고차원적으로 가 보자. 인간은 이성에게 끌린다. 특정 조건이 맞으면 두 이성은 사랑을 하게된다. 이것조차도 알고리즘이다.
실제로 알고리즘은 2021년 현재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인공 지능만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빅데이터 분야에서 데이터를 긁어모으는 과정에도 알고리즘이 사용되고, 그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가공하고 필요한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도 알고리즘이 사용된다. 물론 실행 과정에서도 알고리즘이 사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경제 주체들인 사람들은 결제 방식으로 신용카드를 선택한다. 단순히 세금 공제 몇푼 더 받으려던 것이었는데 이 신용카드 결제 기록으로 인해 현대인은 너무나 많이 노출된 상태이다.
언제 어디를 가서 얼마나 무엇을 혹은 무엇에 소비하였는가는 기본이며, 주간 월간 연간의 데이터가 쌓이면서 식습관, 독서취향, 영화 선택, 패션 성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더 남이 잘 알아 볼 수 있도록 데이터가 노출되어 있다.
무서운 세상임에 분명하다. 이쯤 되면 구글의 ‘사악해지지 말자’라는 구호의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온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과정도 이제는 알고리즘이 매칭 프로세스로 결정해주는 세상이다.
매파(인간)을 통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등록 및 검색(컴퓨터 + 인간)으로 소개가 이루졌다. 그러다가 이제는 순수하게 컴퓨터가 알고리즘을 통해 단독으로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은 커플을 선정 해준다.
심리 상태와 조건 등을 판별해 낼 수 있는 몇십 가지 질문에 답만 하면 컴퓨터는 그 답을 기초로 커풀 매칭 프로세스를 완료한다는 것이다.
질문 몇 가지로이 30년 아니 길게는 50년간 같이 살아 갈 사람을 컴퓨터가 결정해 준다니 헐이다. 그리고 이 산업은 현재 어마어마하게 호황이라는 것이다.
책은 이미 영화로 만들어져 익히 알려진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야기도 들려준다. 빅 데이터를 활용해 범죄 발생률을 낮추는 실적은 물론이며 실제로 영화처럼 발생하지 않은 범죄에 대한 예방을 위해 실제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멀쩡한 사람도 감시 감금을 당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실제로 미국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비행기 탑승 직전에도 알고리즘에 걸러져 비행기도 못타는 세상이란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중심이 노동을 해야 먹고 사는 사람을 대처하는 알고리즘으로 이어진다.
문서 정리에만 터무니없이 많은 인력과 시간을 소비한 후 막대한 비용을 청구하는 변호사들이 너무나 쉽게 알고리즘에 대체되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로펌의 변호사들이나 월가의 펀드메니저들이 해고되고 있다. 수십명이 몇 달을 해야 할 일을 알고리즘이 몇 시간만에 해치우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으며 복지는 물론 급료조차도 원하지 않기에 많은 사업주들은 알고리즘을 선호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범죄자들의 가석방을 검토하는 판사들도 마찬가지란다. 사실 가석방율을 알고리즘이 검토해 보니 사실에 기반을 두고 검토하기 보다는 검토자들(판사)의 배고픔 수준에 비례한다는 성향이 알고리즘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처럼 알고리즘에 의해 나약하고 모순투성이의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임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가장 장점으로 삼고 있는 창조성이 필요한 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AI가 작곡한 곡으로만 이루어진 연주회가 성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바하풍의 음악을 학습한 후 알고리즘은 바하풍의 음악을 작곡한 후 이를 일반인들에게 들려주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바하의 미발표곡을 새로 들은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영화산업에는 제작전에 작품의 내용인 시나리오를 입력하면 흥행수익을 계산하여 출력하는 알고리즘 사업이 있다.
대규모 제작 비용이 들어가는 시나리오에는 이제는 이처럼 알고리즘에게 수익성을 평가받는 것이 필수코스가 되어 있을 정도다.
인류가 점점 기계에게 밀려나는 극단적인 예를 들며 마무리 해 보겠다.
아날로그 사진 업계의 대표였던 코닥은 직원이 14만명 이었고, 회사 가치는 230억달러 였다고 한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로 트랜드가 바뀌며 코닥은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대표적 사진 업체는 이제 인스타그램이 차지하는데 2012년 페이스북에 매각될 때 직원은 12명이었고 회사 가치는 10억달러 였다고 한다.
기술로 인한 혜택(저변 확대와 낮은 가격)의 대가로 사람들의 직장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인공지능이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도 무섭지만 우리 인간들이 모르는 사이에 노동의 주체가 인간에서 점점 기계나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거북한 상황이다.
이 경향은 앞으로도 상당히 유지 될 것이다.
뚠자는 생각한다. 이익 추구 성향이 짙은 인간의 현재 성향상 추세는 한동안 더 이어질 것이다. 아마 심각성을 인식할 때가 오기는 할 테지만 이미 제대로 다 털린 이후라 별다른 방도 없이 기계중심의 문명으로 끌려가리라고 본다.
내가 죽은 뒤, 아니 내 자식이 50정도 까지만 이라도... 좀 더 늦어지기만을 바란다. 평점 8.2
<호모데우스(Homo Deus)>에서 데우스는 신(神, god)이라는 의미다. 아프리카 초원 태생의 호모 사피엔스가 점차 그 능력을 키워 온지 수십만 년이 지난 현재 인류는 신이 되려고 한다고 저자는 예상을 하고 있다.
전작인 <사피엔스>가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과거를 주제로 이야기했다면, 이 책에서 저자는 근현대의 인류 행적을 분석하고 미래에 초점을 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론을 보면 인류는 기아(굶주림), 질병, 전쟁등 생존에 관련된 끊임없는 위협으로부터 많이 벗어난 상태라고 말한다.(하지만 2020년 우리는 코로나로 된통 당하고 있다.)
우선 전 지구적으로 굶주림 보다는 비만이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평균 수명은 전 세계적으로 높아져 오히려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1,2차 세계 대전 같은 전쟁은 이제는 많이 힘들어진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에게는 행복과 장수(긴 수명)라는 화두가 던져졌으며, 과학과 기술은 그 화두를 해결하기 위해 열일 중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피엔스>의 성공에 힘입어 본인만의 의미 부여를 이 책에서도 구현한다. 이 책 역시 상당한 히트를 쳤다. 저자는 과학과 종교를 한 쌍으로 묶어 관찰하고 분석했다. 물론 종교는 윤리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과학 기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 유전자가 조작된 인류가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그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 아직은 종교가 막아서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그 규제는 풀릴 것이다.
저자는 그것이 아마도 선천적인 유전에 의한 질병에 대해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시작할 것이라 말한다. 뚠자도 동의한다.
2020년 10월 18일자 국민일보는 '유전자 가위 기술(CRISPR) 국내임상 허용을' 이라는 기사를 냈다. 희귀 유전자 난치병 환자에 대한 치료 목적이라고 한다. 이런 식이다. 아마 조만간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 올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은 안 봐도 진행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부유한 자들에게 생명을 연장하도록 할 것이고, 더 부유한 자들에게는 성격 생김새는 물론 머리까지 똑똑한 맞춤형 아기가 태어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폴터> 참조)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가보면 저자는 실리콘밸리가 대규모의 실험실이며 과학이라는 종교의 행사장이라고 묘사한다. 또한 데이터 즉 정보라는 종교의 막강함에 대해 무한 강조를 한다.
맞는 말이다. 정보와 지식 그리고 데이터는 미래 인류를 지배하는데 있어 필수요소이다. 정보나 지식의 양이 적었던 과거에는 학습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 자들이 권력을 독점했다.
시대가 바뀌어 누구나 교육을 받고 쉽게 검색이 가능해진 현대에는 빅데이터(big data)나 고급 정보 와 지식이 특정 집단에만 몰리고 있음을 본다. 구글, 페이스북 등에 엄청난 수준의 빅데이터가 쌓여 감을 우리는 보고 있다.
반대로 정보에 대한 통제도 이루어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만리방화벽’이다.
저자는 인류가 인본주의를 근본으로 한 과학적 발전으로 단순한 유전자적 생물체로서의 알고리즘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즉 지구 최강의 종으로서 생물학적 한계를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인류의 미래 모습을 그려 보는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이 지은 <특이점이 온다>처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기존에 한계 수명을 극복하고 생물학적 신체 제약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결국 신이 되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뚠자 역시 어느 정도 동의한다.
정상적인 이성적 사고가 유지되어 인류가 서로 치고 받아 파멸로 가지 않는 한 단기적 과학 기술의 목표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신인류의 탄생과 인공지능(AI) 정도가 될 것이다.
지구는 기존 호모사피엔스와 월등해진 신인류 그리고 인공지능 등 3개 부류가 주도권을 다투는 각축장이 될 것이다. 합종연횡이 있을 것이며, 멸종이 있거나 공존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호모데우스 역시 저자 유발 하라리의 거시적 통찰과 미시적 묘사를 돋보이게 하는 책임에 분명하다. 이 책은 전작인 <사피엔스>를 읽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평점은 8.8
저자는 350.org라는 환경단체 설립자로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상 기후 현상(=지구온난화)에 대한 범지구적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단체의 대표이다. 인류가 편리한 생활을 위해 화석연료를 연소시킬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이상 기후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상태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며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로 빙하를 녹이고 있으며 또한 바닷물의 이산화탄소 농도도 급속도로 증가시키며 산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론적으로 이대로 가면 해수면 상승으로 산성화된 바닷물이 인간의 거주지를 침습 할 것이며 태풍 등의 위력은 더욱 커져 인간 거주지 대부분이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로인한 식량생산의 곤란함은 물론 평지 대부분의 문명 시설도 물속으로 잠길 것이라는 아주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이와 같은 상황은 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마주하게 될 문제이므로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이런 비극을 막을만한 주체로 저자는 화석연료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자들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수십 년 전에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의 사용이 지구 대기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자연 재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치 담배 회사들이 흡연이 폐암 등 전반적인 건강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산화탄소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고 해수면이 높아져 저지대 및 섬이 사라지고 해수 온도 상승으로 수중 생태계 교란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들은 정치적 로비를 통해 석유산업의 덩치를 더욱 키웠고 온 세상의 부를 거의 독차지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와서 개과천선 할까? 그래서 저자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거인들이 문제 해결을 할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테슬러의 엘론 머스크, 페이스북의저커버그와 같은 기술 거인들 말이다.
하지만 이 실리콘밸리의 거인들을 현 시점에서 기후변화를 멈추게 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로봇, 인공지능 분야나 생명 연장을 위한 유전자 분야 같은 곳에만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그들중 특히 구글같은 곳은 기술개발로 벌어들인 돈으로 유전자 가위(CRISPR) 기술을 활용한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수명을 놀리거나 부유층의 2세 혹은 3세 자녀의 생산(?)에 있어 유전자를 맞춤설계 하는 방 안에 골몰하는 중이다.
저자는 사이클 선수 암스트롱을 들면서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하는 것을 묻는다. 약물의 힘으로 싸이클 대회를 휩쓸며 암을 극복한 사나이의 추락한 현실이 들통난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영화 ‘챔피온 프로그램’을 한번 보면 된다.
여기서 주목한 부분은 약을 먹은 암스트롱이 인간이냐 아니냐이다. 대부분 당연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더 좋은 기록과 성적을 내기 위해 근육 강화제 등의 약을 사용한다. 미국 프로야구계는 물론 우리나라 프로야구에도 약물 파동이 심심치 않게 나오지 않았는가?
중요한 관점은 약을 복용하였으나 인간으로 본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똑같이 성능을 향상 하기 위해 신체기관을 하나하나씩 바꿔 가다 보면 과연 어디까지를 인간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해 줄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자. 크리스퍼라고 부르는 유전자 가위가 있다. 생명공학 계열의 많은 연구 전문 회사는 자국의 허가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사람의 DNA를 대상으로 맞춤 유전자를 구성하여 인공적으로 신체의 각 특성이나 성격 심지어 지능까지 원하는 대로 맞춘 아이를 설계하여 낳게 해 줄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인간으로 인정해 줘야 할까? 아니면 자연적인 유전자 결합이 아닌 인공적인 설계에 의한 통조림 캔과 같은 공산품으로 보아야 할까? 얼마전에 소개한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다.
출생부터 완전 우월한 조건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애초에 설계된 외모와 성격 그리고 지능을 가질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자식을 맞춤설계 할 정도면 그 부모의 재력은 안 봐도 비디오 아닐까 한다.
지금도 이미 부로 인한 계급사회화 되어 가는데 더욱 가속화된다. 일반 가정에서 남녀가 결혼하여 기존 가족 계획 방식대로 낳은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 아이들은 그들끼리 결혼하고 부를 물려받고 또 다시 설계된 후손을 만들 것이다. 그럼 일반인들은?
아울러 기술 거인들은 인공지능 AI를 더욱 수준 높게 개발하여 사람을 직장에서 내보내고 로봇으로 교체하려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의 기술 거인들에게 지구의 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건 역시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결국 제시된 것이 태양열 패널과 비폭력저항이다. 화석연료를 소비하여 전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를 무공해 태양열 패널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일단 시간을 벌어 보자는 것이다.
결국은 정책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돌르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정책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권력을 가진 자와 그들 옆의 돈줄인 로비스트들에 대항하여 비폭력 저항을 전개 하자는 것이다.
2020년을 사는 문명권과는 달리 지금도 1930년대와 같은 생활을 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은 태양열 페널를 설치하여 전기를 공급 받게 되었다. 현대적 기술이 적용되면서 그들의 삶은 질적으로 변화되었다고 경험을 이야기한다.
현재 상황으로 보아 시간적 기회가 얼마 없는 만큼 적극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자고 촉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뚠자가 보기에 상당히 난해한 문제이며 전지구적인 문제임에 틀림없다. 피해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먼저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전 지구적 자연 재앙과 실리콘 벨리에서 벌어지는 인공지능과 생명 유전 공학을 다루던 저자가 갑자기 그 해결책으로 태양광 패널과 비폭력 시위를 제시하면서 마무리하는 걸 보니 조금 아쉬웠다. (용-뱀-지렁이 느낌?)
앞서 언급했던 기술 거인들 중 머스크처럼 지구 인류를 태워 다른 행성에 보내자는 계획 정도는 들고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튼 뚠자가 걱정이 많다. 인간의 미래가 참 걱정이다. 가만히 살아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숨 안쉬는 것들(AI 로봇)하고 경쟁해야 하지, 숨 쉬는 것들(유전자 조작으로 설계된 무시무시한 인간)하고도 경쟁하지, 거기에 숨(이산화 탄소)도 콱콱 막혀오지...
사진에서 보듯 두께가 엄청난 책이다. 800페이지가 넘는 문제작이다. 현직 (2020년 10월 기준) Google사의 인공지능 개발 담당 이사인 레이 커즈와일이 2010년도에 출판한 책이다. 그는 기계 인식 분야의 개발자로서 많은 특허와 발명품을 가지고 있다.
스티비 원더라는 앞을 보지 못하는 미국 흑인 가수 요청을 받고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발명을 하게 된다. 이러면서 대한민국의 영창악기와 협업을 통해 신디사이저(Synthesizer) 제품도 출시하였다. 해당 제품은 '영창커즈와일'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도 판매중이다.
한편 미국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린 사람이니 과거 이력이나 현재의 직업 등으로 미루어보아 아주 헛소리를 할 사람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의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는 왜 이런 얘기를 먼저 하나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책을 읽게 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먼저 책 제목에 나오는 ‘특이점’이라는 단어부터 정의하고 가야 한다. 특이점(singularity)이란 인간이 만든 기계 지능이 인간의 지적 지능을 앞서게 되는 그 시점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2016년 3월에 알파고(alphago)라는 인공지능이 바둑에 있어서 이세돌 9단을 4승1패로 이기는 충격적 사건을 잘 알고 있다. 그 이후 알파고는 현재까지 알려진 어떠한 인간 바둑 기사에게도 지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언뜻 보면 이미 책에서 말하는 특이점이 벌써 온 건 아닌가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알파고는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는 바둑용 특수 지능 일뿐이다. 즉 특이점을 보고자 한다면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해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한 번 더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보겠다. 알파고는 스스로 바둑을 배운 게 아니며 어떤 목적이 있어서 바둑을 두는 것도 아니다.
알파고는 인간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었고 과거에 있었던 바둑 기사들간의 대결로 만들어진 기보를 데이터로 입력받아 주어진 데이터 처리 방식에 따라 학습을 하는 알고리즘 일 뿐이다. 이 알고리즘은 학습을 바탕으로 하여 실시간 입력되는 데이터를 처리하여 바둑 규칙에 맞는 데이터를 출력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특이점이 왔다면, 알파고 기계가 스스로 뜻한바 있어 바둑을 배우고, 특정 상대를 스스로 지목하고 대전을 치러야 하며 그 과정에서 나름의 의미를 논리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 후 실행하고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인공지능이 나오는 시점이 특이점이다 할 것이다. 저자는 특이점이 발생하는 그 시점을 2040년대 후반 정도라고 책에 적어 놓았다. 뚠자 나이 70대 정도 일 텐데 과연 그때 정말로 특이점을 볼 수 있을까?
자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 가보자. 저자는 2040년대 후반 정도를 특이점이 오는 시기라고 예측 한 근거로 ‘기술의 가속화’를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뭔가 하나가 나오고 다시 또 다른 하나가 나오고 하는 시간은 지루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는 이야기다.
‘기술의 가속화’를 수학적으로 풀어서 이야기하는 책이 따로 있으니 이 내용은 그때 다시 다루겠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중학교 3학년 과정에 나오는 2차 함수 그래프를 생각하면 될 거라고 이야기 해주며 지나가겠다.
이처럼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 중에서 유전자기술(G) 나노기술(N) 로봇 기술(R)을 활용하여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어설 것이란 이야기다.
읽다 보면 유전자 기술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굉장히 오래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본인 혹은 인공지능 특이점이 도래하기까지 생명을 연장하고픈 사람들을 위해서 써 내려간 부분이라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언젠가는 소개할 ‘폴터’라는 책에 커즈와일이 등장한다.(유명 인사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커즈와일은 자신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 알약을 하루에 100개씩 먹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아무튼 유전자 (조작)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은 다음 세대 혹은 미래 세대의 수명을 지금의 100세 시대가 아닌 수 백세 시대로 갈 수 있게 하려고 준비 중이며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참고로 커즈와일은 기술 신봉자로 보인다. 광범위한 유전자 기술을 통한 유전자 조작의 결과물이 농작물이나 식용 가축 심지어 인간이라 하더라도 딱히 두려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술의 선함을 추구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다시 본론인 특이점을 중심으로 보자. 인간의 두뇌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구현은 어려보이므로 결국은 인간의 뇌를 완전히 연구 해야만 한다.
현재의 연구는 뇌를 스캔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때 이용하는 장비가 fMRI라고 한다. 사람이 장비 안에 들어가면 두뇌 부분을 집중적으로 스캔할 수 있으며, 스캔하면서 연구자가 질문을 하거나 어떤 생각을 유도하면 나타나는 반응을 데이터로 수집하는 식인 것이다.
이런 수준만으로도 분명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두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면 말이다. 올리버 섹스 선생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얼마나 뇌가 경이로운지에 대해 여러 실제 사례를 볼 수 있다. 기회가 되면 이에 대한 소개도 하겠다.
따라서 두뇌의 작동 메커니즘을 제대로 파헤치려면 신경세포 수준에서의 데이터 수집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말은 직접 인간의 뇌 속으로 들어가 스캔을 할 수 있는 소형 스캔 로봇인 나노봇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노봇은 아주 작은 나노미터급의 로봇으로 목적에 맞게 스스로 결합, 분해도 가능하며 필요한 세포 부분에 물리적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인간의 몸에 들어가서 외부와의 통신도 가능한 롯봇을 말하는 것으로 뚠자는 이애했다.
책 내용에 따르면 인간의 머리에 수천에서 수만 개의 나나봇이 들어가서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과연 어떤 미친 사람이 검증도 안 된 소형 로봇을 자신의 뇌에 집어 넣으라고 하겠는가?
유전자기술 필요했던 이유가 이거였나? 유전자 조작으로 사람의 뇌만 복제를 만들어 사고가 나도 윤리 문제를 피해가려는...
아무튼 뇌의 신비를 나노봇의 도움으로 다 풀어버리고 나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담은 로봇 하드웨어가 필요하게 된다.
로봇 기술에는 하드웨어적인 팔,다리는 물론이고 두뇌 부분에 탑재되는 인공지능까지 포함된다. 결국 사람과 같이 스스로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데다가 엄청난 기억력과 계산력까지 보유한 두뇌가 물리적인 신체까지 갖추게 되는 것이다.
비로서 자아를 갖는 지적 기계 존재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인간의 유기체적인 두뇌를 기계적 두뇌로 바꿀 수 있는 기술 개발에 결정적 조력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겁나게 빠른 자료 조사와 연산 능력등이 자동으로 계산되어 인간에게 제공될 거라고 말이다. 자아를 작는 로봇이 그렇게 순순히 협력적일까?
한편 저자는 본인의 우주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주 자체가 대단한 지적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어느 시점에 되면 우주는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의 변화를 모색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뚠자의 아들 뚠뚠이는 빵 터졌다.)
그 중에서도 블랙홀은 제일 지능이 높다는 것이다. 지적 비지적인 모든 사물을 빨아들여 통합하는 존재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 인간도 메일 소나 돼지를 먹는데 미량이나마 계속 지능이 증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이미 죽어서 지능이 없는 상태를 먹어서 지능이 더 나아지지 않는 것인가?)
아울러 우주에는 곳곳에 웜홀이 존재하여 통신이나 직접적 이동이 생각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한다. 모든 우주 SF 영화적인 생각은 모두 인정해 준다.
그리고 아직까지 연락이나 일체 반응이 없는 것으로 봐서 인간을 제외한 직접 생명체는 우주의 없을듯하다는 것이다. 외계인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만약에 있다면 벌써 왔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주장에 대해 들어오는 여러 반박들에 대한 재반박까지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먼저 특이점이 오게 할 이런 기술들이 구현되면 발생할 위험성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저자는 자신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 위험성에 대해 오히려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도 기술개발 자체를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이다. 이미 기술 개발 과정은 너무 많이 진행된 상태이며 이제와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돈이 되었던 전쟁이 되었던 목적 달성을 위해 결국 어디선가 기술이 개발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기술이 개발되어 기계화된 인간을 유기체 상태인 인간과 같은 인간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단호하게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인간이 만들어낸 순수 기계 인공지능 로봇 또한 인간의 자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쯤되면 뚠자도 감탄을 하는 수준이다. 책에 대한 내용은 이정도로 정리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뚠자도 커즈와일 저자에게 갖는 여러 생각을 다음 편에서 정리해 보겠다. 왜냐하면 인공 지능은 인류의 미래 모습을 바꾸게 할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 어느 모습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