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자고로 술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식사이며, 음료수이자, 기쁨이요 슬픔 그 자체다. 삼국지연의에도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유난히 많은 장수가 한 명 있다. 바로 익덕 장비다.

 

의형인 미렴공 관우와는 달리 무척 까칠한 수염을 길렀던 모양이다. 여타 작가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삼국지에서 장비의 수염을 따끔따끔한 밤송이 껍질에 비유 했으니 말이다.

 

뚠자가 기억하는 장비의 첫 음주 장면은 도원결의다. 역시 첫 만남이라 장비도 무척 조심스러 웠나보다. 큰 문제는 없이 훈훈한 형제의 출발이 묘사되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황건적을 토벌하고 논공행상에서 정규군이 아니었던 유비는 공적에 비해 다소 초라하게 조그마한 고을 현령이 된다.

 

매관매직등의 부패가 만연하던 시기였던지라 황제의 칙사 독우라는 자가 감찰을 하러와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으며 뇌물을 요구했다. 이런 모양을 며칠을 참다가 드디어 장비가 폭발한다.

 

음주 후 나무에 칙사를 묶어놓고 죽일 듯이 채찍질한 것이다. 그 일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조용히 잠수타기 신공에 들어갔다.

 

두 번째 음주 사건은 장비에게 본진을 맡기고 유비가 관우와 전투를 벌이러 나간 사이에 벌어졌다. 참아 보려고 했지만 장비는 음주를 하게 되었고 주사를 부리다 부하를 구타하게 된다.

 

억울하게 맞은 부하는 여포에게 본진을 급습하도록 성문을 열어주었다. 장비는 유비 관우의 가족도 내버려둔 채 혼자 도망쳐야 했다.

 

세 번째 음주 사건은 장비 본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관우가 죽은 이후 유비가 이릉대전을 선언하자 장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으리라 다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출전하는 모든 병사에게 흰색 갑옷을 입으라고 지시한다. 기한을 지키지 못하자 장비는 음주후에 책임자들을 구타했다. 결국 구타당한 부하들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장비를 죽인다.

 

이처럼 술과 관련해서 장비의 인생은 한마디로 주생주사(酒生酒死)라 하겠다. 도원결의 음주를 통해 형제로 태어났고, 한잔 술로 부정부패 항거하고, 다른 한잔 술로 쪽팔린 도주를 하고, 마지막 한잔 술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것이다.

 

물론 술버릇으로 크게 덕을 본 경우가 있으니 유비가 촉으로 진군할 때 장비도 한 몫 하는데 엄안이라는 장수를 술자리로 유인하여 사로잡은 것 이었다.

 

이처럼 유독 장비에게만 술 관련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장비는 당시에도 알아주는 빨간코 주당이었던 모양이다.

 

장비는 워낙 다혈질에 성질 급한 싸움꾼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싸움만큼은 맞수였던 여포에게는 없는 의리가 있었으며 여포에게는 더더욱 없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다.

 

별 볼일 없는 돗자리 장수 유비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은 물론이려니와 황제에 까지 올리는데 1등 공신이며, 제갈량의 신묘함을 확인한 후에는 업수히 여기지 않았으며, 군사 방통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뿐인가? 촉의 장수 엄안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회유하여 귀순 시킨 것 또한 기본적인 장비의 스펙을 150% 상회하는 결과였다. 또한 장판교에서는 비록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꾀를 내어 조조의 백만대군도 진격을 멈추고 장비에 눈치를 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장비는 처음엔 무력 위주의 테크트리 완성도만 보여주다가 점차소프트파워 부분의 성장마저도 보여주는 돋보이는 캐릭터가 된 것이다.

 

비록 주사가 심해서 문제가 끊이지 않았지만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의리의 장비였다.

 

세상 살다보면 이런 술버릇 가진 사람 한두명 알게 된다. 술 먹기 전에는 정말 말 잘 통하고 좋은 사람인데 술만 마시면 주사가 심한 사람들 말이다.

 

역시 교육의 문제라 본다. 술을 엉터리로 배워서 그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서는 자녀가 음주를 하게 될 나이가 되면 먼저 선수를 치시라. 술을 권하고 좋은 주도(酒道)를 익히도록 힘써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뚠자도 뚠뚠이를 그리 해보려고 계획 중이다.

 

728x90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0) 2020.11.16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0) 2020.11.14
감정의 발견 - 마크 브래킷  (0) 2020.11.07
의자의 배신-바이바 크레건리드  (0) 2020.11.04
총 균 쇠1 (책 내용)  (0) 2020.10.30
Posted by ttoonza
,
728x90

여포

오늘은 삼국지의 많은 인물 중에 비주류 인물 한 명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바로 문제아 여포다.

 

삼국지에서 유래된 말 중에 마중적토 인중여포라는 말이 있다. ()들 중에서는 적토마가 가장 뛰어나며 사람들 중에서는 여포가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말이다. 무엇이 뛰어나다는 말인가 하니, 장수로서 말 타고 무기 들고 일대일 대전을 벌이는 능력이 뛰어남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싸움 기술에 최고 수준이라는 여포가 힘과 속도에서 당대 최고라는 말인 적토마의 조합이니 으뜸 아니겠는가? 적토마를 탄 여포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 했겠는가?

 

사실 삼국지 연의를 보면 일대일 대전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여포라는 명성에 비해 실제로 승리를 거둔 유명한 장수는 의외로 드물다. 여포의 대단함을 보여주는 장면은 주로 장비와의 대결이었던듯 싶다.

 

여포는 장비와 두 번이나 맞짱을 떴다. 처음 대결에서는 시종일관 팽팽했으나 다소 여포가 우세한 듯 나온다. 결국 관우와 유비가 가세하면서 3:1 싸움이되자 여포가 피하면서 승부를 보지 못했다.

 

두번째는 싸움에서도 다시 1:1로 싸우는데 이때는 '쪼다' 형님 유비가 장비를 불러들여 승부를 보지 못했다. 불꽃튀는 승부였으나 장비가 실수할까봐 불러들였다고 묘사되어 있다.

 

두번 모두 여포는 좋은 말을 타고 싸웠으니 뚠자가 보기에는 장비의 판정승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할리데이비스와 스쿠터를 탄 사람들의 대결을 상상해 보면 될까 싶다. 마상에서의 칼싸움 시절 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몇 번만 치고 빠져도 일반 말들은 지칠 텐데 적토마가 요리조리 달려 주며 상대를 압박 하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이점이겠는가?

 

두 번이나 붙었던 장비에 입에서 삼성가노(三姓家奴)라는 욕이 튀어 나왔단다. 성씨를 세 개나 갖게 된 종놈 이라는 욕이다. 오로지 직진만하는 장비의 성격상 여포같은 인격을 보면 당연히 쌍욕이 나올법하다. 여포가 뛰어난 싸움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비주류가 된 이유는 그를 거두어준 사람을 배신하고 죽이기를 두 번이나 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말이다. 이처럼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배신을 일삼는 자를 누군들 믿고 파트너로 삼으려 하겠는가?

 

의외로 진궁이 여포를 도와보려 했으나 여포는 항우급 인물이 아니었고 진궁은 범증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아니었다. 여포는 작은 이익 추구에 급급한 나머지 본인의 명성이나 상호 신뢰에 금이 가는 것은 신경 안 쓴 인물인 셈이다. 거시적 안목으로 현재 사안을 판단하고 명분을 지키고 큰 일을 도모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여포가 만약 명예를 존중하고 의리를 중하게 여겼다면 관우나 조자룡 같은 명성을 후대에 남기는 것은 물론 삼국지 연의의 내용 자체도 수정을 해야 할 만큼, 실제 역사도 크게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여포가 첫 번째 양부 정원을 배신한 이유는 명마를 탐해서였다. 말을 탐내 양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똑같은 적토마였음에도 미렴공 관우는 말 선물을 받기는 하되 주군인 유비를 향한 충심을 버리지 않았으니 참으로 비교된다.

 

여포가 두 번째 양부인 동탁을 배신한 이유는 초선이라는 미녀 때문이다. 연의에 나오는 이 초선이라는 미녀는 실존 인물은 아니라고들 한다. 아무튼 여포는 동탁의 시녀와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이유로 둘 사이가 틀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탁은 여포에게 죽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꾼 나관중은 여포를 기막힌 로맨티스트로 만들어 주었다. 사랑을 위해 배신을 선택했다며 말이다. 좋게 포장해서 로맨티스트이지만 한낱 싸움꾼이고 호색한이며 배신자일 뿐이다.

 

마지막엔 기개마저도 버린다. 결국 조조와의 싸움에 여포군이 패하자 여포의 부하였던 진궁은 당당히 죽음을 요구한다. 하지만 여포는 여기서도 살아 보겠다고 조조에게 부하로 삼아 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여포의 무장으로서의 가치에 미련이 있던 조조가 주저 할 때 의외로 인간성 좋다는 유비가 단호하게 말한다. “정원이나 동탁의 전철을 보지 않았소?” 너무나 이성적이라는 조조의 주저함과 온화하다는 유비의 냉정한 결론이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삼국지 연의의 일진 중에서도 원탑이었던 여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이 경박하여 비주류로 전락하더니 끝내 비참한 최후로 일생을 마감한 여포를 보며 많은 어린 독자들이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다.

728x90
Posted by ttoonza
,
728x90

운장(雲長) 미렴공(美鬑公) 관우. 얼굴은 대추처럼 붉은색을 띠며 키는 8척이나 되고 적토마에 올라타서 무게가 80근이나 나가는 청룡언월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그의 애마이자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마라 불리는 적토마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서 적장과 생사를 건 한판 승부를 위해 달려가는 모습은 관우의 아랫배에 이를 정도로 길었다는 수염만큼이나 보는 이들의 긴 감탄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한다.

 

유비를 처음 만날 때 관우는 때를 기다리며 마을에서 흔장을 하며 지냈다고 소설에 나온다. 문무를 겸비한 장수가 아니었을까? 물론 동탁의 화웅을 베고 원소의 안량과 문추를 손쉽게 제압해 버린 관우의 무용은 조조가 영원히 짝사랑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본인 입으로 말했듯이 타고 다니는 말이 무게를 버티지 못할 만큼이었다는 거구인데다가 붉은 얼굴색에 긴 수염으로 대표되는 특이한 모습에 청룡언월도를 장작 휘두르듯 하는 압도적인 무력을 갖췄으니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모양이다.

 

관우는 멋쟁이 임에도 내실을 갖추었던 인물임에 분명하다. 어디 그가 무장으로서 단순히 싸움만 잘했었던가? 군주를 향한 충성심이야말로 여포 못지않은 그의 무력이 오히려 무색할 지경이다.

 

유비가 제대로 전력을 다 갖추기 전, 조조와 맞짱뜨다가 개박살나고 도망가자 관우는 유비의 2명의 부인을 살리기 위해 조조에게 조건부 항복을 했다. 조건을 걸고서 항복하는 자나 그 조건 내용이 터무니없음에도 불구하고서라도 부하로 삼고 싶어하는 자.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아마 조조의 관우를 향한 사랑은 연합군이 동탁을 치러 모였으나, 여포의 부장 화웅에게 막혀 도무지 진격을 하지 못할 때부터 였을 것이다. 내보내는 장수들이 모조리 화웅에게 죽음을 당하자 두려움에 아무도 나서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관우가 일어섰고, 그 용기에 감탄하며 조조가 따뜻한 술 한잔을 준다. 그때 관우가 하는 말 한마디. “식기전에 베고 와서 마시겠소.” 관우는 약속을 지킨다. ~ (이런 멋진 사내들간의 대화와 행동에 뚠자는 뻑 간다.)

 

영원히 부하로 거두려는 조조는 넓은 집과 좋은 음식, 희귀한 보석 그리고 어마무시한 미녀들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했지만 관우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딱 한 가지 적토마 만큼은 진심으로 기쁘게 받았을 뿐이다. 바로 주인 유비에게 바람처럼 달려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는 내심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말이다.

 

조조는 인물을 알아보는 눈이 있고 인재에 대한 욕심도 대단했던 사람이다. 쓰던 안쓰던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했다 아니 강요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서와 사마의였다. 그런 조조가 마음먹고 찍어본 장수가 관우였는데 웬걸 이빨도 먹히지 않았다.

 

유비의 행방을 확인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가버린 것이다. 그것도 5개의 관문을 돌파하면서 막아서는 6명의 장수를 죽이면서까지 말이다. 그 유명한 관우의 ‘56장참대목이다. 지금 이야기한 이 대목은 영화 삼국지-명장 관우로도 나와 있다. 어찌나 재미있게 보았던지...

 

유비측에서는 언제나 확고한 2인자였으나 제갈공명의 등장 이후 존재감이 조금 떨어지긴 했다. 특히 적벽대전 말미의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주며 제갈량과의 목숨건 군령장 집행 대목에서는 관우의 체면이 많이 망가지기도 했다.

 

여기서 보여주는 조조와 관우의 인간적인 모습은 참으로 대단하다. 울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천하제일 권력자 조조와 다음 생에서나 친하게 지내보자는 관우의 마지막 보은말이다. 뚠자가 보는 남자들 세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삼국지버전' 이다.

 

이후 유비가 기틀을 마련하며 서촉에서 황제에 오르며 관우에게 형주를 맡긴다. 유비와 제갈량이 서촉으로 이동한 후, 관우는 형주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힘을 쏟는데 후반부에 들어서 약간의 판단력 저하가 있었던 것 같다.

 

오나라와는 평화를 유지하라는 제갈량의 신신당부 조차도 저버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오나라 여몽의 기습 공격 한방으로 형주를 잃고 나자 너무 자포자기가 빨랐다. 독화살에 맞아 화타가 살을 찟고 뼈를 갈아내며 치료를 할 때에도 그 극심한 통증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그 아니었던가? 참을성으로 권토중래를 기약하고 유비가 있는 본진으로 귀환 했었다면 어땠을까?

 

이릉대전의 시기와 장소, 장수가 달랐을 것이고 결과도 다르지 않았을까? 촉나라가 좀 더 에너지를 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모은 에너지로 삼국통일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뚠자적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해 생각해 본 이야기다.

 

한편 관우의 죽음 이후 천년도 훨씬 넘은 뒤에 난데없이 동방예의지국 조선에 관우가 소환되었다. 공자가 아닌 관우가 말이다. 임진왜란을 끝낸 결정적 문제적 장수 이순신.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군주 선조는 삼국지의 관우를 끌어들인다.

 

그래서 동대문 근처에 '동묘'라는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만들어졌다. 관우가 우리나라에서도 신격화된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관우신은 토착 무속과 다시 한 번 더 결합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중국 본토 대만에서도 관우는 제갈량 못지않은 핵인싸. 유명 위인의 사후 무덤으로 보자면 문묘는 공자가 모셔져 있고, 무묘로는 관우묘가 있어 해마다 중국인들이 제사를 지낸다.

 

특히 대문이나 금고에 관우의 형상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관우가 지키고 있으면 복과 제물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기한 책략과 다양한 전술로 제갈량이 사랑 받았다면, 멋쟁이이면서 우직하지만 너무나 인간적이고 한없는 의리를 가진 '진짜 사나이'로서의 관우도 오늘날까지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728x90
Posted by ttoonza
,
728x90

삼국지를 읽다보면 무척 많은 전쟁들이 나온다. 황건적과의 전쟁, 동탁 vs 연합군의 전쟁, 원소 vs 조조의 전쟁등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흥이나며 제갈량의 가세로 각국의 참모가 초절정 상태의 지략 대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적벽대전은 가히 원탑으로 불릴만한 전쟁일 것이다.

 

특히 특히 형주를 거점으로 하며 조조군과 맞써 싸울 상황도 될법했던 유비가 군자의 길을 걷는 바람에 조조는 너무나 손쉽게 형주를 차지한다. 여기서 다들 유비를 쪼다라고 한다.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유비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안전을 확보하고 민심을 수습하며 자신에게 충성할 군대를 만들기에는시간이 너무 부복한 것이었다. 조조가 기다려 준다던가? 유비도 나름 멀리 한수 내다 본 결정이었으리라. 거기다 명분도 있지 않은가? 형제의 땅을 취할 순 없노라....ㅋ

 

그러니, 조조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싸움없이 형주까지 차지하고 보니 내친김에 천하통일을 이루고자 하였던 것이다. 물론 장강이 최대 장벽임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나 내버려 둘수만도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진행 국면을 들여다보면, 조조 vs 유,손 연합 대결보다는 오히려 제갈량과 주유의 대결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천하를 노리는 유, 손 두 진영의 최고 수뇌부의 지략 대결은 적벽대전 서막부터, 전쟁 후 주유가 죽을때까지 이어진다.

 

초반에 제갈량의 동오를 방문하면서 주유는 제갈량을 떠보려하지만, 오히려 주유 부인을 들먹이는 제갈량의 심리전에 말려들어 흥분하며 선수를 빼앗긴다. 이후, 화살 10만개, 동남풍 사건, 형주 장악, 유비와 손상향의 결혼 등 모든 부분에서 주유는 제갈량에게 매번 당하고 만다. (제갈량은 이와중에 또 다른 라이벌 관우를 완전히 제압한다.)

 

허풍과 과장이 있겠지만, 소설로만 대한다면 제갈량은 거의 신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므흣)

 

적벽대전에는 복룡봉추 중의 한명인 봉추 방통도 등장해 한몫하고 대기 모드로 들어간다. 장강은 중국에서 항하와 더불어 어마어마하게 큰 강이다. 이곳에 육지에서만 싸움하던 병사들이 물결의 흔들림에 중심을 못잡고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조조군을 아무 의심없이 배를 서로 묶어 파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고 설득한 이가 바로 방통이었다. 이후 방통은 의외로 동오에서 크게 대접을 못받게되자 유비를 찾게 된다.

 

아무튼 전쟁은 벌어졌고, 적벽에서 조조는 대패하고 그 기세가 꺽인다. 조조의 생애에서 천하통일은 물 건너 갔음을 조조도 느끼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전쟁으로 유비는 형주를 차지하며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특히 내실있는 행정을 바탕으로 인물을 정비하고 군대를 정비하여 추가로 서촉까지도 얻게된다. 유비 세력이 국가급으로 눈부시게 성장하게 된 배경은 적벽대전이었다.

 

한편 전쟁을 압도적 대승으로 마무리지었으나 결과적으로 얻은게 없는 손권측은 상대적 박탈을 느끼며 형주를 차지한 유비가 배아픈 상대가 된다. 틈만 나면 유비가 차지한 형주를 노리게 되며, 둘 사이에는 협력하기 어려운 보이지않는 틈이 생기게 된다. 이는 삼국지 3대전쟁의 마지막인 이릉대전의 불씨가 된다.

 

다음 동영상은 뚠자가 아들 뚠뚠이와 적벽대전에 대해 나눈 이야기입니다.

PPT로 자료를 보면서 이야기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6DYakURfMc

728x90
Posted by ttoonz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