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삼국지가 황건적의 난을 기술하며 시작한다. 아울러 유비가 등장하고 이어 그 유명한 도원결의가 이뤄진다. 따라서 삼국지의 주인공 중에서 단연 유비에 대한 언급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대부분 나관중 삼국지의 시각과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들 하지만 작가의 시각에 따라 상당한 주관적 평가도 따르게 마련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설민석의 삼국지'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지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에 대해 상당히 후한 평가를 해 주었다. 20여년전에 읽은 '이문열의 삼국지'를 보면 굉장히 실용성을 중시하며 조조는 치켜 올리고 유비는 한없이 까 내린다. 이런 경향은 30여년 전에 읽은 '고우영의 삼국지'에서는 더욱 잘 나타나는데, 유비를 아예 '쪼다'로 부르기까지 한다.
작가의 원전 재해석은 나름의 시각이 반영되는 것이므로 읽는 재미가 있다 하겠다. 뚠자도 뚠자의 시각으로 유비를 표현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유비는 그저 시골의 돗자리 장수였다. 비록 황제의 먼 친척이라고 하지만 '중산정왕의 후예'라고 하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중산정왕의 아들만 120여명이라니 그 후예라고 해서 특별한 신분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기다, 아버지가 일찍 죽었으니 집안 사정이야 뻔할 것이고 그래서 돗자리짜며 연명했을 것이다.
그런 유비가 후에 3분의 1만큼이긴 하지만, 황제의 자리까지 올라갔으니 자수성가한 입신 양명은 인정해 주어야 마땅하다. 동네 이장쯤에서 중국 전체를 거머쥔 한고조 유방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공적이라 뚠자는 생각한다.
흔히 유비는 민중의 아픔을 생각하며, 민중과 함께한 군주로 여겨진다. 제일 극명하게 표현된 곳이 조조가 형주를 공격해오자 유비 일행이 신야성을 나와 도망칠때 백성을 버리고 먼저 빨리 도망가자고 하는 말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백성과 함께 도망친 부분이다.
이 부분이 진심이었던 의도적이었던 유비는 민심과 함께 한다는 결정적 대중 지지도를 갖게 된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부인 하나가 죽고, 갖 나은 아들마저도 별거 아니라는 듯 내동댕이 치며 조자룡의 안위를 걱정함에 대중의 지지도 상승도 상승이지만, 적극적 지지자인 부하들의 충성심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게 된다.
'아! 저런 사람의 부하구나 우리는...' 하는 생각을 갖는 부하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된다.
따라서 뚠자의 입장에서는 조조만큼의 업적은 안되니 별 볼일 없다거나 심하게 '쪼다'로 까지 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유비는 유비만이 가진 캐릭터적 매력으로 대중의 지지도와 열성 부하들의 자발적 충성 지원덕에 무명의 돗자리 장수에서 황제의 반열로 간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로 이름을 남겼으니 말이다.
뚠자는 유비의 덕망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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