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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둔갑 포국의 예

중국 역사상 최고의 두뇌와 높은 충절로 만인에게 추앙받고 있는 제갈량은 어떠한 학문을 갈고 닦았기에 그렇게 대단한 명성을 얻었던 것일까? 초등생이었던 뚠자가 처음 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점이다.

 

공자 사상이나 노자, 장자의 가르침으로는 생사를 가르는 전쟁터에선 그리 실용성이 없어 보이며 손자병법 오자병법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미래 예측적인 부분이 있어 보인다. 즉, 단순한 병서의 기본만이 아닌 미래를 예측하는 무슨 학문을 별도로 배우거나 연구한거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이긴하지만, 공부하기 바쁘니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렇게 14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뚠자는 우연한 기회에 제갈량이 어떤 학문을 익혀서 미래를 예측하고 적벽에서 호풍환우(바람을 부르고 비를 맞이함)의 신선술을 부렸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 제갈량의 기가 막힌 전략전술의 근거가 되는 학문은 바로 '기문둔갑'이었던 것이다.

 

흔히 요즘 말하는 기문둔갑은 개인의 운세를 보는 사주 명리학이나 자미두수와 비슷한 잡술로 여겨진다. 21세기인 2020년 지금 보기엔 허무맹랑하다 생각할 정도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정작 관련된 책을 1권 사서 들여다 보면 내부에 잘 짜여진 그 오묘한 숫자 놀음에 빠져들게 된다. 아마도 2000년 전에는 제왕학으로 불리울만 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제갈량은 숫자의 조합을 해석함으로 세상 모든 관심사를 풀어낸다는 이 학문을 지극히 깊이 연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제갈량이 조조군을 상대로 형주에서 싸움을 하게 되는데 조조군이 진법에 따라 군을 움직이자, 제갈량은 조자룡으로 하여금 진법을 파해하는 법을 알려준다. 휴문 생문 상문 두문 경문 사문 경문 계문의 8문의 위치와 간단한 방위를 설명해 주고 어디로 공격을 들어가 어느 곳으로 빠져나오면 조조군의 진법이 쉽게 무너지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때 처음 9궁팔괘진이 등장하면서 기문둔갑이 삼국지에서 소개된다.

 

이런 8문의 등장과 파해법에 이어 적벽대전에서는 안개가 심하게 끼는 날을 예측하여 10만개의 화살을 공짜로 받아낸다. 아울러 적벽대전에서 가장 중요했던 동남풍까지 불도록 하니 기문둔갑의 활용도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가 된다.

 

혹자는 제갈량이 그 근처에 오래 살면서 겨울에도 가끔 동남풍이 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이야기 한다. 혹은 조직을 동원해 그곳에 오래 살던 사람들로부터 동남풍이 부는 경험적 데이터를 얻은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첫번째 폄하는 가끔 분다는 걸 알아도 목숨을 걸고 날짜를 맞춰가며 바람을 불게 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고, 두번째는 그 당시에 데이터 획득 인프라를 너무 과하게 포장한 것이다. (뚠자는 제갈량에게 너무 후하다)

 

제갈량의 기문둔갑을 이용한 미래 예측은 적벽대전 이후에도 유비가 연하의 손부인을 맞아들이며 겪는 위기를 잘 넘도록 안배해 둔 금낭3계에서도 발휘된다.

 

이후 삼국지 3대 대전의 마지막인 이릉대전에서도 나타난다. 유비가 육손에게 호되게 피하고 도망가자 육손이 유비를 잡고자 추격을 해 온다. 그때 제갈량이 언제 미리 만들어 두었는지,  돌무더기가  팔진도를 이루며 배치된 곳에 이르렀다. 짙은 안개와 음산한 요기 등에 가로막혀 육손은 거의 혼미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다행이 때마침 지나가던 제갈량의 장인인 황석공이 나타나 육손을 구해주니 육손은 제갈량의 무서움을 깨닫고 더 이상 유비를 쫒지 않게 된다.

 

이처럼 기문둔갑의 흔적은 삼국지 소설 곳곳에 보인다. 나관중이 기문둔갑에 심취하였던지 아니면 정말 제갈량이 기문둔갑을 깊이 연구하여 그 활용을 극대화 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소설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제갈량은 기문둔갑을 극성까지 발전시켜 개인의 일반사 수준을 넘어서 집단 간의 전투 예측, 기상 예측, 나아가 요즘말로 부비트랩에까지 활용 했으니 그 능력이 실로 부럽기만 하다.

 

뚠자는 너무나 부러운나머지 잠깐 아주 잠깐 기문둔갑의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학문으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허나 그 이상의 적용 즉 생과사가 오락가락하는 전쟁터에서 전략 전술로 활용하는 수준까지는 뚠자에겐 너무 어려운 부분으로 여겨졌다.

 

역사상 우리 한반도에서도 기문둔갑을 극성으로 익혀 그 학문적 수준이 발생 본토인 중국을 넘어서는 위인이 있었다. 학문의 이름도 기문둔갑을 뛰어넘어 '홍연진결' 이라고 불렀던 분이 계시니 그분이 바로 화담 서경덕 선생님이다. 당시 최고의 미녀인 황진이가 그렇게 유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가지 않으셨다는 바로 그분 말이다. 참고로 뚠자는 아마 혹 했을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기문둔갑은 학문으로서의 깊이가 충분하다고 뚠자가 판단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1번씩 구경 해 봄직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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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too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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