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장(雲長) 미렴공(美鬑公) 관우. 얼굴은 대추처럼 붉은색을 띠며 키는 8척이나 되고 적토마에 올라타서 무게가 80근이나 나가는 청룡언월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그의 애마이자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마라 불리는 적토마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서 적장과 생사를 건 한판 승부를 위해 달려가는 모습은 관우의 아랫배에 이를 정도로 길었다는 수염만큼이나 보는 이들의 긴 감탄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한다.
유비를 처음 만날 때 관우는 때를 기다리며 마을에서 흔장을 하며 지냈다고 소설에 나온다. 문무를 겸비한 장수가 아니었을까? 물론 동탁의 화웅을 베고 원소의 안량과 문추를 손쉽게 제압해 버린 관우의 무용은 조조가 영원히 짝사랑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본인 입으로 말했듯이 타고 다니는 말이 무게를 버티지 못할 만큼이었다는 거구인데다가 붉은 얼굴색에 긴 수염으로 대표되는 특이한 모습에 청룡언월도를 장작 휘두르듯 하는 압도적인 무력을 갖췄으니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모양이다.
관우는 멋쟁이 임에도 내실을 갖추었던 인물임에 분명하다. 어디 그가 무장으로서 단순히 싸움만 잘했었던가? 군주를 향한 충성심이야말로 여포 못지않은 그의 무력이 오히려 무색할 지경이다.
유비가 제대로 전력을 다 갖추기 전, 조조와 맞짱뜨다가 개박살나고 도망가자 관우는 유비의 2명의 부인을 살리기 위해 조조에게 조건부 항복을 했다. 조건을 걸고서 항복하는 자나 그 조건 내용이 터무니없음에도 불구하고서라도 부하로 삼고 싶어하는 자.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아마 조조의 관우를 향한 사랑은 연합군이 동탁을 치러 모였으나, 여포의 부장 화웅에게 막혀 도무지 진격을 하지 못할 때부터 였을 것이다. 내보내는 장수들이 모조리 화웅에게 죽음을 당하자 두려움에 아무도 나서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관우가 일어섰고, 그 용기에 감탄하며 조조가 따뜻한 술 한잔을 준다. 그때 관우가 하는 말 한마디. “식기전에 베고 와서 마시겠소.” 관우는 약속을 지킨다. 캬~ (이런 멋진 사내들간의 대화와 행동에 뚠자는 뻑 간다.)
영원히 부하로 거두려는 조조는 넓은 집과 좋은 음식, 희귀한 보석 그리고 어마무시한 미녀들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했지만 관우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딱 한 가지 적토마 만큼은 진심으로 기쁘게 받았을 뿐이다. 바로 주인 유비에게 바람처럼 달려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는 내심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말이다.
조조는 인물을 알아보는 눈이 있고 인재에 대한 욕심도 대단했던 사람이다. 쓰던 안쓰던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했다 아니 강요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서와 사마의였다. 그런 조조가 마음먹고 찍어본 장수가 관우였는데 웬걸 이빨도 먹히지 않았다.
유비의 행방을 확인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가버린 것이다. 그것도 5개의 관문을 돌파하면서 막아서는 6명의 장수를 죽이면서까지 말이다. 그 유명한 관우의 ‘5관 6장참’ 대목이다. 지금 이야기한 이 대목은 영화 ‘삼국지-명장 관우’로도 나와 있다. 어찌나 재미있게 보았던지...
유비측에서는 언제나 확고한 2인자였으나 제갈공명의 등장 이후 존재감이 조금 떨어지긴 했다. 특히 적벽대전 말미의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주며 제갈량과의 목숨건 군령장 집행 대목에서는 관우의 체면이 많이 망가지기도 했다.
여기서 보여주는 조조와 관우의 인간적인 모습은 참으로 대단하다. 울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천하제일 권력자 조조와 다음 생에서나 친하게 지내보자는 관우의 마지막 ‘보은’ 말이다. 뚠자가 보는 남자들 세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삼국지버전' 이다.
이후 유비가 기틀을 마련하며 서촉에서 황제에 오르며 관우에게 형주를 맡긴다. 유비와 제갈량이 서촉으로 이동한 후, 관우는 형주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힘을 쏟는데 후반부에 들어서 약간의 판단력 저하가 있었던 것 같다.
오나라와는 평화를 유지하라는 제갈량의 신신당부 조차도 저버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오나라 여몽의 기습 공격 한방으로 형주를 잃고 나자 너무 자포자기가 빨랐다. 독화살에 맞아 화타가 살을 찟고 뼈를 갈아내며 치료를 할 때에도 그 극심한 통증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그 아니었던가? 참을성으로 권토중래를 기약하고 유비가 있는 본진으로 귀환 했었다면 어땠을까?
이릉대전의 시기와 장소, 장수가 달랐을 것이고 결과도 다르지 않았을까? 촉나라가 좀 더 에너지를 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모은 에너지로 삼국통일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뚠자적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해 생각해 본 이야기다.
한편 관우의 죽음 이후 천년도 훨씬 넘은 뒤에 난데없이 동방예의지국 조선에 관우가 소환되었다. 공자가 아닌 관우가 말이다. 임진왜란을 끝낸 결정적 문제적 장수 이순신.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군주 선조는 삼국지의 관우를 끌어들인다.
그래서 동대문 근처에 '동묘'라는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만들어졌다. 관우가 우리나라에서도 신격화된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관우신은 토착 무속과 다시 한 번 더 결합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중국 본토 대만에서도 관우는 제갈량 못지않은 ‘핵인싸’다. 유명 위인의 사후 무덤으로 보자면 문묘는 공자가 모셔져 있고, 무묘로는 관우묘가 있어 해마다 중국인들이 제사를 지낸다.
특히 대문이나 금고에 관우의 형상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관우가 지키고 있으면 복과 제물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기한 책략과 다양한 전술로 제갈량이 사랑 받았다면, 멋쟁이이면서 우직하지만 너무나 인간적이고 한없는 의리를 가진 '진짜 사나이'로서의 관우도 오늘날까지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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