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조조

2020. 12. 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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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조조 차례다. 다들 알겠지만 맹덕이라는 자를 가져서 <맹덕신서>라는 책도 지었다. (이 책은 나중에 장송에게 개망신 당한다.) 어릴 적에는 아만이라고도 불렸다.

 

역사적 위인에게는 장점이 많다. 2,000년 가까운 옛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조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제일 기본인 총명함에다 결단력까지 갖췄으며 거기에다가 과감하기까지 하다.

 

조조는 어릴적 허자장이라는 당대의 유명한 관상가로부터 치세에는 능신, 난세는 간웅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무척 좋아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총명함을 보여 준다.

 

또한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여백사네 집에 들렸다가 오해로 그 가족을 다 죽인 후에 진궁에게 내가 세상을 버릴 수는 있어도 세상이 나를 버리게 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 부분에서는 결단성 과감성을 보여 준다. 거기다가 인간 조조의 잔인함까지 보여 준 것은 당연하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자기 부하로 데려오려는 인재 욕심만큼은 오늘날의 기업 CEO나 정치 지도자들이 본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조조에게 문무(文武) 양쪽의 인재들이 몰렸음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이 곧 3국의 국력 차이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조조하면 임기응변의 달인임을 빼 먹어서는 안 된다. 군대 행군 도중 갈증으로 지친 군사들을 달래기 위해 산 고개 너머에 신맛 나는 매실 이야기로 입에 침이 고이게 하여 무사히 행운을 마친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가 망매해갈(望梅解渴).

 

또한 화용도에서는 관우에게 무릎 꿇고 눈물로 목숨을 구걸 하는것까지 거침없는 행보는 그의 변화무쌍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강을 만나면 원칙을 고수하며 멀리 돌아가는 유비의 따분함을 느끼는 독자라면, 다리를 만들어 빠르게 직진하는 조조에게서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거침없는 조조가 딱 한 가지 망설인 것이 있으니 바로 황제가 되는 것 이었다. 허수아비 황제를 겁박하고 황후는 죽이기까지 했지만, 조조 본인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로 가기는 거부했다.

 

황위를 찬탈한 역적이라는 운명을 자신이 뒤집어쓰기는 싫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조조가 죽은 후 그의 큰아들이 황제가 되었으나 그것은 조조가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평생 인재를 구하기 힘썼고, 또한 그 만큼 사람에 대한 의심도 많았던 조조는 사마의를 알아보았다. 그래서 다른이 즉 유비나 손권의 부하가 되지 못하게 반강제로 자신의 부하로 불러들였지만 실질적으로 중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가 되면 봉황이 날아오르고, 바지속의 송곳도 날카로움을 드러내듯이 조조 사후 사마의가 결국 조씨 가문을 상대로 이겨 사마의는 손자 사마염 황제로 앉히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천하제일 기재였던 양수를 계륵이란 말 한마디로 그 싹을 잘랐는데 왜 조조가 사마의는 그대로 살려두고 중용하지 말라고만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여백사 가족을 몰살할 때나 양수를 죽일 때보다 더 나이 들면서 인간적으로 더 너그러워진 까닭이리라.

 

실력 위주의 인재 기용과 안정적인 내치와 실속있는 임기응변 전략구사 등은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조조를 보고 배우도록 만드는 점이다.

 

현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성공했을 스타일이다. 조조를 향해 엄지척 한 방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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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too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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